현대전자 DR발행 '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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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전자의 주식예탁증서(DR)발행 계획은 계열 분리와 자본 확충을 한꺼번에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증자와 다름없는 DR 발행을 통해 자본금을 대폭 늘려 재무구조를 좋게 하는 한편, 상선.중공업 등 현대 계열사들은 이 DR 인수에서 빠지는 실권(失權)을 통해 지분을 줄임으로써 계열 분리 여건(지분 3% 미만)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현대전자는 지난 7일 이사회에서 오는 9월 이전 2억주 이내의 전환주식과 6억주 이내의 DR를 액면가 이하로 발행하는 안을 의결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DR를 얼마나 발행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나 주간사인 샐러먼 스미스 바니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 며 "지난 10일 은행장 회의에서는 이를 전제로 한 현대전자의 미래 자금 흐름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주식을 팔아 계열 분리를 하는 방안은 헐값 매각이 될 소지가 있고 매각 대금이 주식 소유자인 현대중공업.상선으로 들어가 현대전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DR 등 신주 발행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이 경우 현대전자의 경영권이 어디로 가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이는 앞으로 발행할 DR의 규모에 달려 있다. 현대전자는 현재 수권자본금 6억주 가운데 4억9천여만주를 발행한 상태인데, 7일 이사회가 결정한 발행 한도는 기존 발행분의 두배에 가깝다.

현대전자의 최대 주주인 현대상선의 보유 지분은 9.25%며, 현대중공업은 7.01%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 계열사들이 DR 인수에 참여하지 않고, 이에 따른 실권주를 제3자가 떠안을 경우 자연스레 새로운 최대 주주가 탄생할 수 있다.

약 4천원(12일 현재 주가 3천8백원)에 DR 3억주를 발행한다고 가정하면 현대전자에는 1조2천억원 정도의 새 자본금이 수혈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이런 대규모 DR를 누가 인수하느냐가 관건이다. 업계는 반도체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대만계 자본이 DR 인수를 통해 현대전자의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진념 경제부총리는 12일 "현대전자는 신규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의 외국인 투자자금을 끌어들일 계획" 이라며 "현대전자가 현재 해외 파트너와 자금 조달 및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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