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둔화-회복 신호 공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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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고 있다. 나스닥지수 2, 000선이 무너진데다 제조업 및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인해 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비관론자들의 목소리다. 반면 실업률이 더 올라가지 않고 서비스부문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으로 볼 때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각종 지표와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해 보면 일단 상반기에는 둔화추세가 이어질 것이나 대규모 감세정책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인하 등이 어우러질 경우 하반기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 지금 어떤 상황인가〓지난해 상반기까지 5%선을 그리던 성장률이 4분기에 내구재 소비가 크게 줄면서 5년 만의 최저치인 1.1%로 주저앉았다. 올 1분기 성장률은 영(零)에 근접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 경제가 얼마나 급격하게 둔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소비지출.기업투자.제조업 가동 등 호황의 발판역할을 했던 지표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가율이 뚜렷하게 둔화하거나 하락세로 반전했다. 급격한 경기하강으로 기업 수익이 줄어들면서 주식시장도 침체국면에 빠져 있다. 1년 전 5, 000고지를 돌파했던 나스닥지수는 12일 장중에 심리적 저지선인 2, 000선이 힘없이 붕괴됐다.

그러나 괜찮은 소식도 있다. FRB가 최근 12개 지역 연준의 경기동향 보고서를 취합해 발표한 '베이지 북' 에 따르면 뉴욕.보스턴 등 7개 지역의 경제가 소비지출 증가에 힘입어 완만한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필라델피아 등 나머지 5개 지역에서는 아직도 경기둔화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어쨌든 이번 분석은 지난 1월에 비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또 지난달 실업률이 1월과 같은 4.2%를 기록, 1999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내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비스분야에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 월중 신규 고용자가 13만5천명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치(7만5천명)를 크게 웃돌았으며, 그 결과 실업률도 예상(4.3%)보다 낮았다.

◇ 소비지출과 제조업 회복이 관건〓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최근 의회에서 "생산성과 인플레 부문에서의 우려는 크지 않으나 소비심리 위축이 큰 문제" 라고 말했다. 경제의 68%를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성장률을 제 궤도에 올려 놓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경기변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비자신뢰지수는 최근 5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으며, 2월에는 1백6. 8로 4년반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인들이 경기상황을 그만큼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1월 소매판매액이 예상치(0.5%)보다 높은 0.7%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회복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생산활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전미구매자관리협회(NAPM)의 제조업지수는 1월에 41.2였으나 2월에는 41.9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50미만이면 경기가 여전히 하강국면에 있다는 뜻이지만, 일단 조금이나마 높아졌다는 것은 하강세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 미 정부 대책은〓감세정책과 금리인하가 핵심 경기 부양책이다. 부시 행정부는 세금을 깎아줌으로써 개인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이를 소비지출로 연결해 올해 2.4%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도 잇따른 금리인하로 경기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FRB는 지난 1월 두차례에 걸쳐 연방기금 금리를 1%포인트 내렸는데(현행 5.5%)전문가들은 상반기 중 최소 1%포인트 가량 추가 인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가 다소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폴 오닐 재무장관은 얼마전 "미 경제가 사실상 제로 성장에 머물고 있지만 재고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는데다 감세안과 금리인하가 맞물려 상승효과를 낸다면 곧 성장의 동력을 회복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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