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의 날] 가사 손놓고 남편과 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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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살펴주는 그 눈길 떠날 새 없고/젖어있는 그 손길 마를 새 없네/사랑 없인 잠시도 못사는 마음/저를 위해 바친 건 하나 없네/(후렴)아내여 아내여 그대는 나의 길동무. "

북한에서 등장한 '안해의 노래' 1절 가사다.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여가수인 황송월씨가 부른 '안해의 노래' 는 지난 8일 '국제부녀절'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된 신곡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아줌마들' 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고(故)하수영씨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를 연상케 한다.

북한에서 여성의 날은 북한 기혼 여성들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날이다. 평소 집안 일은 전혀 거들지 않던 남성들이 이날만큼은 아내를 위해 밥을 짓거나 외식을 하며 간단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또 직장 남성들은 여직원들에게 점심턱을 낸다고 한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북한에서는 남녀평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으며 탁아소.유치원.편의봉사시설 등의 설치로 여성들이 마음놓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고 예의 선전을 반복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에 따르면 실제 사정은 다르다. 여성이 남성과 함께 산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식적으로는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 해도, 사회 곳곳에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정 살림살이는 모두 여성의 몫이고 양곡이나 남새(채소)를 배급할 때도 여성들이 받아오기 일쑤다.

식사자리에서 남정네들은 잡곡이 덜 섞인 밥을 먹거나 맛있는 반찬을 독차지한다.

대부분 남편이 아내에게 반말을 한다. 직장에서도 남자직원은 여직원에게 예사로 심부름을 시키며 청소는 대개 여직원 담당이다.

그러나 북한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은 우리와 대비된다.

정무 제2장관실이 펴낸 정책자료집 '통일대비 여성정책연구' 에 따르면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가운데 여성이 20.1%이고 지방인민회의는 25%에 달한다.

우리의 경우 16대 국회에 진출한 여성의원은 3%,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는 각각 5.7%, 1.6%로 나타나 북한에 비해 훨씬 낮다.

요즘 북한 보도매체들은 자강도 장강군 읍협동조합 박옥희 관리위원장, 과학원 유색금속연구소 현영라 연구사, 세계여자마라톤을 제패한 정성옥 선수 등 각 분야의 특출한 여성들을 '시대의 영웅' '여성의 자랑' 으로 자주 내세운다.

이는 일터에서는 '전투적으로' , 가정에서는 '알뜰하고 깐지게(깐깐하게)' 일해 직장과 가정의 면모를 새롭게 해달라는 바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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