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54. 주차장 된 소방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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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2월 7일 오전 대구시 북구 대현동 주택가 골목길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았다.

서둘러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너비 4m의 소방도로가 차량들로 꽉 막혀 있어 화재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소방호스를 연결하기 시작했지만 1백여m쯤 연결하는 사이, 오토바이는 다 타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차량.주택에 불이 옮겨붙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지난해 10월 18일 새벽엔 화재신고를 받고 수성구 만촌동 주택가로 긴급출동했다. 그러나 그때도 T자형의 골목길 커브지점에 불법주차한 차량이 많아 길이 6m가 넘는 소방차를 불난 곳에 댈 수 없었다.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동안 불길이 번져 한 사람이 숨졌다.

불은 소방관들에게도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적은 골목길을 가로 막고 있는 불법주차 차량들이다. 이 차량 때문에 현장 출동이 늦어져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참 많다.

불을 끄기 위해 국민의 혈세로 소방도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현재로선 그림의 떡이다. 그 많은 소방도로가 주차장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은 골목길에서 '차량들과의 전쟁' 을 벌여야 한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진입로가 막혀 소방관들이 마이크로 차량번호를 외치며 주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 소방관 4~5명이 소형 승용차를 들어 옮긴 뒤 화재현장에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녘에 차량 주인을 찾느라 인근 가정집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뛸 때면 속이 다 타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주차를 했다면 연락처라도 남겨놓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진화는 초기 5분이 가장 중요하다. 불법 주차한 차량만 없어도 인적.물적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시민들이 의식을 바꾸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동수 <대구시소방본부 방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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