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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부국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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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케임브리지 학파로 불리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창시자가 영국의 앨프리드 마셜이다. 수학과 물리학에서 출발해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거쳐 마셜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학문이 경제학이었다. 1885년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된 마셜의 취임 강연은 이렇게 끝난다.

"강한 인간의 위대한 어머니인 케임브리지가 세계로 배출하는 사람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으로 자기 주위의 사회적 고뇌와 싸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선의 힘 중 적어도 일부를 기꺼이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 경제학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마셜은 빈곤의 여러 원인을 연구하고 그 극복을 통해 인간사회의 진보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을 경제학의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에 주목하고, '변화를 위한 징세' 를 재정정책의 새로운 이념으로 제시함으로써 후생경제학의 기초를 쌓았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수위가 조절되듯 세금을 통해 소득격차를 보정해야 한다는 현대적 상식은 마셜 이전까지만 해도 상식이 아니었다. 과표액이 커지면 세율도 높아지는 누진세제를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간 소득불균형을 세금을 통해 해소하듯 국가간 빈부격차도 세금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하이난(海南)성 보아오에서 열린 아시아포럼에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내놓은 파격적 제안이다. 부자 국가들에 대해 '부국세(富國稅)' 를 부과해 그 돈으로 가난한 나라를 돕도록 하고, 그 관리를 유엔에 맡기자는 것이다. 부국이 이룬 부의 일부는 빈국의 자원을 착취한 결과인 만큼 그 일부를 가난한 나라에 환원시킴으로써 국가간 소득재분배를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세계화에 따라 국가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세계화 반대론자들은 말한다. 미 예일대 경제학 교수인 제임스 토빈 박사는 이익만을 좇아 이 나라 저 나라 시장을 옮겨다니는 단기투기성 자본 거래에 세금을 매겨 그 돈으로 빈국을 지원하자고 제안해 198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토빈세' 는 여전히 아이디어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국세도 취지는 좋지만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다. 국가간 소득불균형이라는 세계화 시대의 난제를 해결할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21세기의 마셜은 없는 것일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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