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어둠속의 댄서' 에 온정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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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너의 눈이 될 수 있다면…. "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의 수술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각장애 어머니. 외국영화 '어둠 속의 댄서' 가 그려내는 애잔한 모성애다. 이 영화가 지난 주말 개봉되면서 똑같은 상황에 처한 시각장애 모녀의 사연이 알려져 극장가를 움직이고 있다.

부산시 연제동에 사는 최귀옥(崔貴玉.34)씨와 둘째 딸 양지혜(6)양의 이야기다. 선천성 2급 시각장애인인 崔씨와 하루하루 시력을 잃어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실명하게 될 지혜양이다.

崔씨가 지혜의 증세를 알게 된 건 지난해 12월. 눈이 보이지 않아 딸의 증세를 몰랐던 崔씨는 지혜가 넘어져 다치는 일이 잦아지자 병원을 찾았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영원히 앞을 못보게 될 것" 이란 진단에 崔씨는 역시 어릴 때 시력을 잃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앞 못보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딸아이에게만은 대물림하고 싶지않아요. "

1년 남짓 걸리는 수술과 치료에 드는 비용 1천여만원을 벌기 위해 崔씨는 거리로 나섰다. 4평짜리 슬레이트 단칸방에서 홀로 딸 둘을 키우는 그에겐 꿈도 꾸기 힘든 액수여서다.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월 27만원을 보조받지만 월세와 전기료 13만원을 빼면 난방도 하기 힘든 군색한 처지.

하지만 식당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는 그에게 일을 맡기는 곳은 없었다. 앞을 못본다는 이유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벌던 남편(43)마저 지난 1월 간암으로 숨졌다. 남편의 치료비를 대느라 5백만원의 빚까지 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 딸 지연(9)양이 앞 못보는 엄마와 동생 대신 살림을 꾸려나간다.

세 모녀의 딱한 사연은 한 이웃에 의해 지난주 '어둠 속의 댄서' 인터넷 홈페이지(http://dancerintheda rk.co.kr)에 올랐다. 이 영화를 수입한 미로비전이 수익금 5백만원을 내놓고, 개봉관에 지혜양 돕기 모금 운동을 제의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개봉관들은 곧바로 성금 모금함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지혜양의 사연을 담은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다. 영화 광고에도 지혜양의 사연을 조그맣게 싣고 있다.

홍주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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