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와이드] 반상회로 다지는 '이웃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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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도시에서는 '이웃이 없는 삶'이 오히려 생활의 자연스런 형태가 됐다.때문에 매달 한번씩 열리는 반상회가 따분한 시정 홍보로 귀중한 시간을 뺏고 쓸데 없는 벌금 논란만 일으키는 불편한 존재라는 인식도 깊다.

그러나 반상회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또 주변에 잊었던 이웃을 찾을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8년째 동네주민들이 부부동반으로 모여 작은 잔치를 여는 마을,9년째 매달 단 한가구도 빠지지 않고 출석율 1백%를 기록한 동네 등 모범적으로 반상회를 여는 곳들도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한결 같이 "소중한 이웃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을 놓칠 수 없어 반드시 반상회에 참석한다"라는 반응이다.

또 반상회 모임의 강제적인 성격을 완화시키고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위해 인터넷 반상회등 새로운 시도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 청주 봉명2동 39동3반

충북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 39통3반(반장 洪貞順 ·여)주민들은 반상회를 8년째 부부동반으로 여는 등 소문난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택지개발로 조성된 단독주택단지인 이곳에 93∼94년 이사온 3반 주민들은 모두 11가구.대부분 이들은 반상회날이면 부부가 함께 참석해 초저녁부터 밤늦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자정무렵까지 모임이 길어져도 헤어짐을 아쉬워 할 정도로 이들은 가족보다 진한 우애를 자랑한다.

이들 부부동반 반상회를 연 것은 94년 12월부터.다들 만난 지는 얼마 안됐지만 성격과 나이(40대 후반)가 비슷해 이내 흉금을 터놓게 된 주부들은 남편도 함께 참석시키자는데 의기가 투합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감도 있었지만 부인들의 성화(?)에 남편들도 얼마 안 가 허물없이 호형호제하면서 어울렸다.아이들도 친형제·자매처럼 지내게 된 것은 물론이다.어른들이 집을 비우면 자녀들은 이웃집에서 스스럼없이 식사도 해결한다.그러다 보니 모두가 이웃집 숟가락 숫자나 기일,자녀들의 기호까지도 소상히 꿰뚫고 있다.

종종 단체여행도 즐기곤 하는 이들은 쌈짓돈을 모아 경로잔치를 베푸는가 하면 인근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빨래,김치담그기 등의 자원봉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洪씨(49)는 “이웃끼리 살갑게 지내다보니 무엇보다 자녀교육에 좋은 것 같아 살맛이 그만”이라며 “올해는 불우이웃 돕는 일에 더욱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상회라도 일방적인 시청의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화합하며 함께 살 수 있을까에 더 치중하지요.”

청주=안남영 기자

*** 군산 신풍동 26통 31반

전북 군산시 신풍동 26통 31반(삼성아파트 5,6라인 28가구)의 주민들.

이 반은 1992년 아파트 입주 이래 9년 동안 반상회가 열리 때마다 단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한 기록을 갖고 있다.

주민들은 한 시간여 걸쳐 이뤄지는 모임 때 시청의 공지사항을 알리는 데는 10분도만 쓴다. 나머지는 주민들의 화합과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 놓고 의견을 나눈다.

주민들은 특히 노부모들을 위한 위안잔치를 자주 열고 있다.

매년 10여차례에 걸쳐 노부모들을 아파트단지의 노인당에 초청해 잔치를 연다.또 노부모가 시골에 있는 경우 직접 찾아가 빨래도 해 주고 음식도 차려 주는 효심을 보인다.

또 반원들 중 애경사가 있을 경우 모두 나서 자기 일처럼 돕는다.

이같은 결과 지난해 12월에는 반상회 모범적으로 여는 반으로 뽑혀 행정자치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7년째 반장을 맡고 있는 이순실(40)씨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다른 통로 주민들도 우리 통로를 부러워 할 만큼 화합이 잘되고 있다”며 “아파트단지에 나무를 심는 등 주거환경 개선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산=서형식 기자

*** 부산 금정구 18개동

부산 금정구는 지난해 11월부터 영상반상회를 열고 있다.

구청과 동사무소 ·지역주민이 금정케이블TV(지역채널 5번)와 함께 1개동씩 돌아가면서 반상회 내용을 미리 제작한 뒤 매달 25일 반상회 시간에 40분간 방영하는 방식이다.

부곡2동 ·장전2동 ·청룡노포동 등 3개동의 반송회를 이같이 내보냈다.

방영하는 내용은 각 동의 특색과 현안문제 ·문화재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구정 현안에 대한 질의 답변 ·구정소식 등으로 꾸며진다.

예를 들어 부곡2동 반상회 중계 때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사물놀이를 배우는 주민의 소감과 강사의 당부말씀 등이 생생한 인터뷰로 나갔다.또 청룡노포동 때는 지역 안에 있는 범어사 문화재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었다.

매회마다 각동의 주민 5명이 구정에 대해 질문을 하면 담당 과장들이 대답하고 구정의 현안이 소개된다.

금정구는 전체 18개동에서 돌아가면서 영상반상회를 계속 내보낼 계획이다.

주민 김만철(金萬哲 ·45 ·회사원 ·금정구 부곡2동)씨는 “사실 구청의 현안사업이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지냈다”며 “이번에 영상반상회를 통해 지역의 문화재도 알고 내가 살고 있는 구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금정구 반상회담당 최현오(崔鉉五 ·31)씨는 “반상회가 주민의 자율에 맡겨진 뒤 반상회가 실제로 열리는 비율은 33%에 불과하다”며 “반상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현안이 뭐가 있는지와 반상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영상반상회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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