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젬마씨 '나는 그림에서…'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불만인 나는 주변에서 뛰어난 여성들을 보면 그 장점을 치켜 주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머리가 좋으냐" 든지 "안목과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든지 하는. 나와 'EBS 청소년 미술감상' 을 함께 진행한 서양화가이자 미술전문 DJ 한젬마(31)에 대해서 나는 주로 "참 예쁘다" "옷걸이가 좋아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는 칭찬을 했던 것 같다.

방송을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한젬마는 상황판단이 뛰어나고 사물을 매우 객관적으로 본다. 무엇보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 지금도 붓을 놓지 않고 산다. 참으로 다재다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 내가 한젬마에게 진정 감탄하는 부분은 마음으로 그림을 읽고 그것을 깔끔하게 서술해내는 그의 글쓰기 능력이다.

머리로 그림을 읽는 이들은 미술 감상을 하나의 '학습행위' 로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 미술이 주체인 수동적 감상행위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읽는 이들에게 미술 감상은 나를 되찾는 시간이다. 화가가 끝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첫 책 『그림 읽어주는 여자』(명진출판.1999)에서 한젬마는 바로 그 과정을 세밀하고도 진솔하게 써내려감으로써 미술을 어렵게 여겨 멀리하던 이들에게 의미 있는 '개안' 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에 새로 낸 책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명진출판.1만원) 역시 그녀가 마음으로 읽은 그림들에 대한 따뜻하고 정갈한 감상기이다. 이번 책은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사랑의 파노라마를 들여다 본 자신의 이야기인 「나는 그림에서 사랑을 배웠다」, 자신에게 화두를 던져 준 예술가들을 소개한 대목인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화가 이야기」, 그림이란 결국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드러낸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등 세 장으로 구성돼 있다.

또 김강용.김원숙.이은호.이숙자.이철수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우리나라 화가들을 중심으로 얀 반 아이크.루벤스.렘브란트 등 고금의 서양미술가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생활 속의 소소한 사건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그것이 그림과 어떤 연관을 가질 수 있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구성 등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술과 미술작품에 낯가림이 있는 일반 대중을 위한 읽을거리이자, 주제가 있는 편안한 에세이로 추천한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