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여성운동 기금 모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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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 여성운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성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문제에 힘을 쏟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꿔 나가야 한다. 여성운동단체들이 여성문제 해결의 대안과 능력을 갖춘 집단이 되면서 가난한 지역의 여성문제, 성폭력문제, 가정폭력문제, 여성농민이 당하는 고통, 가부장제 가족법 등 감춰진 문제들을 사회 한복판에 풀어 놓았다. 그동안 헌신적인 여성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 여성계는 그동안 가부장제 악습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보통여성들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여성 정책대안의 개발, 성차별문제의 사회여론화, 성차별적인 관행제도를 바꾸기 위한 대정부.국회 압력활동, 사회 공동의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활동, 전국에서 활동하는 여성운동단체에 대한 지원활동 등을 벌여왔다.

그런데 최근 일부 여성단체가 심각한 자금난에 비틀거리고 있다. 장충동 '여성평화의 집' 에는 여성단체 10여개가 입주해 있다. 그 중 2층에 있는 우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은 자정이 지나도 불이 꺼지지 않는 날이 많다. 실무자 5명이 퇴근하지 않고 다음날 열릴 토론회 준비 등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모두 10여명의 실무자들이 성실히 일을 하고 있으나 일감에 비해 상근활동을 하는 실무자가 절대 부족하다 보니 늘 야근을 해야 한다. 여성연합 실무자들의 경우 초임 60만원을 받으면서 여성의 인생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었지만 몸이 지쳐 건강이 위협받기도 한다. 당장 올해부터는 부족한 생계비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동안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지원하던 독일의 개신교해외개발원조처의 후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후 독일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장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여성운동 지원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고 요구해왔다.

미국에서는 뜻있는 개인과 기업이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민간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는 기금, 여성운동가의 재교육 지원기금, 성폭력 예방기금, 제3세계 여성운동의 지원기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기금의 경우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고 다만 사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장한 만큼 독일의 국민이 그러했듯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민간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기부운동이 일상화돼야 한다.

우리 여성들은 여성운동이 일궈놓은 성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뜻과 돈을 모아야 한다. 뜻이 있으면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월 1천원 회원 1만명 모으기' 캠페인을 시작한 여성단체연합 후원회에 참여하는 일, 시간을 내서 여성단체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일, 여성문제 캠페인이 있을 때 시민행동단으로 참여하는 일 등이 있다.

기부활동과 자원봉사를 활성화하는 데는 시민의 자발성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기부활동과 자원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에게 정보를 쉽게 제공해줘야 한다. 기부자에게 소득세.법인세 감면혜택을 주는 등 쉽게 기부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줘야 한다.

예컨대 방송에 출연한 사람이 즉석에서 원하는 곳에 출연료를 기부할 수 있도록 연계시스템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운동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올 때까지 여성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대변하고 여성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여성단체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꼭 필요한 조직이다. 앞으로 우리는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또 가부장제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 및 문화활동, 성차별적인 법령개정 활동, 여성의 경제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 등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여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 자신들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여성의 인생을 바꾸는 일에 뜻과 돈을 모았으

南尹仁順(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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