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문예진흥원장은 요즘 대학로 진흥원 사무실에서 문예회관 대극장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의 시선은 대극장 벽에 내걸린 '화수목(火水木) 나루' 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에 고정돼 있다. 김원장이 이 작품(원제 '화수목 나루에 노을지다' )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딸 승미(35)씨가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직접 연출까지 하려고 욕심을 내 쓴 작품이지만 공직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김원장은 고민 끝에 딸에게 바통을 넘겼다.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인 승미씨가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공연장.미술관.박물관으로 함께 다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자유극단의 작품을 모두 본 딸이 누구보다 극단 성격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
김원장 부녀가 함께 작업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원장이 97년 세계연극제 출품작인 '리어왕' 을 연출했을 당시 딸 승미씨가 조연출을 맡은 것. 꼼꼼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딸의 연출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70년대 이후 '무엇이 될고 하니(78년)' 등 전통소재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온 김원장은 승미씨가 파리 제7대학에서 문화개발학 공부를 할때만 해도 연극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미술 쪽 일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연극사회학자인 담당교수의 권유로 연극 공부를 하게 됐고,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전통소재의 현대화작업' 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배우들이 연습하다 갑자기 웃을 때가 있어요. 아버지 연출 스타일과 너무 똑같다구요. " 배우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충분히 작품에 반영하는 아버지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은 게 승미씨의 얘기다. 아버지 김원장은 종종 배우들에게 '독립자존(獨立自尊)' 이라는 말을 한다. 배우와 연출가는 종속관계가 아닌 대등관계에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연출이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속에서 조화와 드라마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조정해서 되는 게 절대 아니지요. " 연출가로 첫발을 내디딘 딸에 대한 아버지의 당부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미래의 공간을 넘나드는 '화수목 나루' 는 역사의 노을과 새벽을 배경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굿의 형태로 엮은 작품.
박웅.박정자 등 중견배우와 자유극단의 30대 젊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원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영입해 아라리난장을 재즈와 랩으로 연주하는 등 현대적 감각의 굿판을 무대에서 펼칠 예정이다. 3월 15~25일 문예회관 대극장.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