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단체장 판공비나 올릴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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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올해 판공비(시책 업무추진비)가 지난해보다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올해 경상경비를 10% 줄이고 판공비를 동결하라는 지침까지 내렸으나 자치단체들이 이를 무시한 채 앞다퉈 판공비를 올렸다고 한다.

최근 몇몇 자치단체장들이 지난해 절약한 판공비를 반납하는가 하면 주민 숙원사업 예산으로 넘긴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도지사 판공비는 기관운영 업무추진비 1억8천만원과 시책 업무추진비 5억9천8백만원 등 7억7천8백만원으로 이는 지난해의 6억9천1백만원보다 12% 늘어난 액수다.

서울시가 국회 행정자치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개 구가 구청장 판공비를 지난해보다 늘렸다.

특히 용산구는 30% 증액한 11억3백만원, 금천구는 18.6% 늘어난 12억4백만원에 이른다. 판공비 액수도 서초.중랑구만 9억원대일 뿐 나머지 23개 구청은 모두 10억원을 넘고 강남구는 행자부가 정한 구청장 판공비 한도액(14억4천4백만원)과 같다.

해당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IMF사태로 삭감된 판공비를 현실화한 것일 뿐 내년 상반기 지방선거에 대비한 과대 편성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구청장 판공비 속에는 부구청장 등 간부들 몫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단체장들의 판공비가 각종 간담회 비용과 경조사 부조금, 행사 지원비 등에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용' 이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판공비 인상이 선거용이란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자치단체장들은 지금이라도 판공비를 자진 삭감하고 그 사용처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서울시내 구청장들의 판공비가 과연 적정한 수준인지도 이번 기회에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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