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로 보는 민초들 독립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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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삼월 연달아 일어났던 만세 시위, 그 군중행렬이 상현의 눈앞을 지나간다.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이 자식 상현아!” 시위군중 속에서 서의돈이 상현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내질렀다.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내면서 상현이 소리질렀다. “네! 형님!” “우리 조선놈들 제법이다.” “그럼요, 형님!” 그때의 만세행렬이 눈앞을 지나간다.’

고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가운데 3·1운동에 참여한 서의돈과 이상현의 대화 내용이다.

91주년 3·1절을 맞아 박 선생의 옛 집에 조성된 강원도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 민족의 독립의지를 되새기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소설 토지로 보는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주제로 열리는 ‘토지책전(展)’이다.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1일 공원 내 느티나무 아래서 개막한 전시는 4월30일까지 두 달간 계속된다.

강원역사교사모임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창씨개명과 정신대 동원 등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과 함께 동학농민운동가 항일의병활동, 독립운동 등 일제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의지와 자존심까지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교사모임은 전시를 위해 소설 『토지』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해 당시의 역사적 배경 등 해설을 추가한 19점의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첫날인 1일에는 역사교사모임 회원이 소설의 내용과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는 등 일제 강점기의 근대사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전시를 둘러 본 박병수(22·세종대 경영과3년)씨는 “소설에 나오는 독립운동 관련 내용을 사실에 대입한 설명과 곁들여 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며 “3·1절에 이 같은 전시를 대하니 뜻 깊고 좋았다”고 말했다.

공원 측은 전시와 함께 중국 연변에 『토지』책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설의 무대 가운데 한곳인 중국 연변의 연변일보 편집부에 근무하는 김혁씨가 최근 메일을 통해 ‘동포와 2세들에게 우리말 교육 및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연길시의 조선문 독서사에 소설 토지가 없다’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박경리문학공원 고창영 소장은 “1897년 시작해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끝나는 토지는 내 나라가 없는 것, 내 땅이 없는 설움을 알 수 있는 책”이라며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 토지책전을 통해 3·1절의 의미를 살펴보는 등 독립을 외쳤던 민초들의 나라사랑을 느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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