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잔잔한 일상, 오버액션에 삐그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한국과 일본의 배우가 협연한 ‘서울노트’는 연극과 현실의 구분에 의문을 던진다.

극장 문을 열면 무대에는 미술관이 펼쳐진다. 막이 오르기 전부터 배우들은 무대 위를 서성거린다. "당신은 연극이 아니라 생활을 보고 있다"는 말 없는 대사였다. 막이 올랐다. 그런데 객석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대만큼 환하게 조명이 들어왔다. 무대는 현실이 되고, 객석은 일상이 됐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벽도 놓이지 않았다.

원작 '도쿄노트'는 그렇게 일상을 '포격'하는 작품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인간의 명백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42)는 솔직하고, 또 정직하다. 바로 그 '도쿄 노트'가 '서울공연예술제 2004'에 초청받았다. 제목도 '서울노트'로 바꾸었다.

이번에는 한.일 양국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함께 작업했다. 히라타와 박광정이 공동 연출을 맡고, 한.일 배우들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무대 안에다 자막을 설치, 일본어 대사가 나와도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노트'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사가 극의 중심을 달린다. 그게 '서울노트'의 무기다. 잔잔한 일상을 통해 짚어내는 삶의 바닥. 울림의 메아리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본 배우들의 고분고분한 어투와 절제하는 몸짓은 담담한 일상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러나 국내 배우들의 연기는 오히려 낯설었다. 일상을 담아내는 일상적인 대사를 지극히 연극적으로 풀고 있었다. 대사는 과장되게 들렸고, 작품의 통일성을 분산시켰다. 정성껏 만든 초밥 위에 어울리지 않는 김치가 한 조각 얹힌 모양새였다.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1만~2만원, 02-766-0228.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