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경련 회장 추대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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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진통 끝에 고육책으로 김각중 현 회장을 차기 회장에 재추대했다.

전경련은 지난해부터 재계의 본산에 걸맞은 '새 인물' 을 차기 회장으로 뽑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완강히 고사하는 바람에 金회장을 떼밀다시피 재추대한 셈이 됐다.

전경련의 정체성도 흔들릴 위기를 맞고 있다.

金회장은 1999년 11월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중도하차하자 재계의 연장자로서 임시 회장직을 맡았다가 지난해 2월 잔여 임기 1년의 회장에 정식 취임했다.

金회장은 그러나 차기 회장을 맡아달라는 재계의 주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며 막판까지 고사했다.

金회장은 급기야 이날 회장단 회의에 불참했다.

오후 5시30분 손병두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 며 고사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회장단은 오후 7시까지 金회장을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자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 후 손병두 부회장? "金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고사해 난처하기는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며 "회장단.고문단이 향후 2년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회원 결속을 다지는 데 적임자로 金회장을 만장일치로 지목했다" 고 밝혔다.

孫부회장은 "金회장의 선친인 김용완 회장도 지난 75년 전경련 회장에 다시 선출된 것에 반발해 3개월 동안 전경련 업무를 보지 않았으나 결국 수락한 전례가 있다" 고 소개하고 "金회장도 전경련의 전통에 따라 수락할 것" 이라고 말했다.

孫부회장은 신라호텔 기자회견장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성북동 金회장 자택으로 직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金회장에게 추대 사실을 알리고 수락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이건희 삼성.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일찌감치 회장직을 고사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맡아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우문제로 재벌 총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김우중 전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았던 게 안좋게 비춰질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현 정부가 전경련 해체론까지 들고 나오며 지속적인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金회장이 설령 총회에서 회장 추대를 받아들인다 해도 흐트러진 재계를 통합하고 전경련 본연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의 위상을 고려할 때 2년 임기가 끝나기 전이라도 5대 그룹 중 한 사람이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경련측은 金회장이 잔여 임기를 채우는 과도기가 아닌 정식 회장이 되는 만큼 활발하게 활동해 재계를 아우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시래.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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