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충돌 '뒷파도'…미-일 관계 난항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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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도쿄〓남윤호 특파원] 미국 원자력잠수함 그린빌호와 일본 어업실습선 에히메마루의 충돌사고 진상이 드러나면서 일본 내 여론이 나빠지고 있어 미.일 양국이 수습에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사고를 낸 그린빌호가 즉시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고 해안경비대가 도착할 때까지 한시간 동안 사고현장을 방치했다는 에히메마루 생존자의 증언에 일본 열도가 분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의 동맹관계를 한층 강화하려는 입장이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양국 보수정권에 부담이 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12일 니혼TV 등 주요 민방들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사고경위 및 책임 소재를 중점 보도하고 미국측의 성의 있는 조사와 보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일관계를 둘러싼 위기관리능력이 문제시될 것" 이라며 "양국 정부로서는 심각한 사태" 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국 태평양함대사령부측은 "사고현장의 파도가 심한 데다 잠수함의 구조적 한계로 그린빌호의 적극적인 구조작업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그린빌호가 취한 유일한 구조작업은 선교에서 로프 사다리를 내려준 것이었다.

또 이를 붙잡고 잠수함으로 올라가 구조된 에히메마루 승무원은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경위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책임은 일단 그린빌호에 있는 것으로 기울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의 사고원인 보도도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도 "사고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원인은 미국 잠수함에 있다" 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에 대해 조속한 사고원인 규명과 함께 승무원과 선박의 피해보상 책임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도 이번 사고를 조기 수습하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사고 선원의 가족들에게 하와이 오아후 섬까지의 항공비 및 숙식비를 제공키로 하는 한편 사고원인이 규명되는 대로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토머스 폴리 주일 미국대사는 11일 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를 방문해 유감의 뜻을 전했다. 해군당국도 12일 그린빌호의 함장을 인사조치한 뒤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측의 이같은 조치는 부시 행정부가 내건 미.일동맹 강화와 미.일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전역미사일방위(TMD) 체제에 대한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번 사고는 미.일 동맹 강화에 나선 부시 정권으로서는 큰 타격" 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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