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것이 궁금해요] '낮은 단계 연방제'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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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Q) 30대 주부입니다. 지난해 6.15 남북공동선언에 명시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을 둘러싸고 최근 정치권 등에서 또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남측의 남북연합제와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길선회 (31 ·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

(A)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하 낮은 단계안)을 이해하려면 우선 북한이 주장하는‘연방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요.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두개 제도,두개 정부’를 만들자는거죠.

여기서 두개 정부란 현재의 ‘남한정부’,‘북한정부’를 그대로 두되, 그 권한을 ‘지역자치’정도의 수준으로 갖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대신 외교 ·국방 등 중요한 권한을 갖는 ‘연방정부’를 구성해 이것이 ‘하나의 국가’를 대표토록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낮은 단계안’은 무엇일까요.

북한은 이를 지난해 10월 정상회담과 관련한 평양시 보고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이라고 말이죠.

원래의 연방제와 비교해 보면 남북한의 현정부가 '지역자치' 정도의 권한이 아니라 외교·군사 등 원래 ‘연방정부’가 갖도록 했던 권한까지 갖게된 것이 차이점이죠. 또 원안에는 없던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한 정부가 보다 높은 권한을 갖도록 한다는 ‘연방제 수정안’을 제시한 것은 1991년 입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에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라는 용어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나가는 방향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金주석의 언급에는 ‘민족통일기구 창설’이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10월의 보고대회는 북한이 연방제수정안을 둘러싸고 10년 가까이 벌여온 작업의 결정판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은 북측이 연방제를 포기했느냐,아니냐에 집중돼있는 것 같아요.

비판론자들은 낮은 단계안은 ‘높은 단계’,즉 원래의 연방제로 가기 위한 전(前)단계일뿐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정부측은 북측이 낮은 단계안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남북연합제안에 다가온 점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이 주장하는 남북연합은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연방-완전통일)의 첫 단계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는 연합 정상회의와 연합 각료회의 등을 구성해 분단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통합과정을 관리하자는 것입니다.

이어 2단계인 연방에서는 연방정부가 외교 ·군사 ·주요내정에 대한 권한을 갖게 하고 지역자치정부는 일반내정의 자율성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죠.

때문에 외견상으로 보면 남북연합제나 낮은 단계안이 모두 현상태의 남북한 정부가 정치 ·외교 ·군사권 등을 갖도록 하자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낮은 단계안은 남북의 현정부의 '상위' 에 민족통일기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기구는 작은 권한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앞으로 정치 ·외교 ·군사권 등을 점차 장악해가는 중앙연방정부로 발전할 씨앗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북측이 그런 기구에 통일전선체적인 단체를 포함시키자고 할 경우 큰 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연합은 남북한 정부 상부에 그런 기구를 만드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연합정상회의·연합회의같은 정책조정기구 내지 협의체적인 기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따라서 양측의 제안에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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