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의 북한문화산책] 11. 어린이 놀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유난히도 눈이 많은 올 겨울. 눈싸움이 그리울 아이들이지만 '산성비' 때문에 나가 놀지 말라는 부모들의 성화도 간단치 않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탈출구는 방안에 박혀 컴퓨터 게임이나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고궁이나 민속촌 등에서 민속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남측의 민속놀이는 '박물관'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도 별로 없고, 대개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민속놀이 한 가지만 놓고 본다면 북측이 우리보다 '민족적' 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 사회가 개방되지 않았음과 맞물린다. 외부문화에 덜 노출되면 놀이의 전승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어린이의 놀이 기재는 우리의 1950, 60년대를 방불케 한다.

썰매타기.팽이치기.고무줄놀이.윷놀이.자치기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놀이문화의 종류와 범주가 단순해 상대적으로 민족적 생활양식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북한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썰매 만들기를 즐긴다. 썰매를 직접 만들어 타다보면 제작과정에서 손재주가 길러진다.

외날타기 같은 썰매는 균형잡기가 쉽지 않아 육체적 단련에는 그만이다. 민속놀이의 교육적 장점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평양 조선중앙TV는 어김없이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앞에서 집단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방송에 내보냈다. 팽이를 치고 눈싸움에 여념이 없는 천진난만의 아이들은 늘 싱그럽다. 북측에서는 일찍이 어린이 민속놀이의 '집체성' 을 주목해왔다.

긴 장대를 세우고 줄을 매달아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부르는 '단심줄놀이' 는 30년대 만주 항일무장투쟁 시기의 놀이를 연상시킨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제 때 평양 스타디움에서 수십명이 무리지어 하던 놀이가 그것이다.

북한 당국은 민속놀이에 담겨진 '사상교양' 적 측면을 높이 산다.

그러나 단심줄놀이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대개의 민속놀이가 정치성과는 무관하다. 수천년 놀아온 민속놀이에 무슨 정치성이 있겠는가.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북측 어린이와 만나면 무얼 하겠느냐고. 답은 간단했다. '같이 뛰놀고 싶어요' . 그렇다.

노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잘하기 위해 논다고는 하지만 노는 게 역시 일하는 것보다 즐겁다. 아이들은 오죽하랴.

실제 민속놀이든 사이버 민속놀이든 남북 어린이들에게 한마당 판을 열 기회를 줄 '문화적 정치력' 이 발휘되기를 신사년(辛巳年)에 꿈꾸어본다.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