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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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4. "은감원장 맡아주소"

경남기업㈜는 한국운수.경남금속.경남유통 등 5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도급순위 12위의 건설회사로 해외 종업원이 8천여명이나 됐다.

1983년 11월 말 현재 자본금 2백50억원에 차입금이 4천8백35억원에 달했다. 자기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상태였다. 외환은행은 지급보증을 포함해 5백7억원이 물려 있었다.

84년 8월 실시한 경남기업에 대한 경영 실사엔 대우측에서 1백50명, 외환은행에서 49명 등 실사요원으로 모두 2백13명이 참여했다.

실사 대상은 해외공사 현장 23곳을 포함해 모두 57곳이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은행감독원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공동 실사에 따른 추정 손실액은 5천1백37억원이었다. 당초 경남측이 제시한 금액의 세 배가 넘는 액수였다.

그로부터 5년 후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중동개발은행 연차 총회에 나는 ADB 대표로 참가했다.

나의 재무장관 시절, 내가 거친 외환은행장으로 있으면서 나와 함께 부실 기업 정리를 했던 주병국(朱炳國) 주(駐)사우디 대사가 나를 사막 골프장으로 안내했다. 나와 고교.대학 동창인 주대사는 재무부에서도 같이 근무했었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골프장엔 뜻밖에도 경남기업골프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일찌기 중동에 진출한 경남이 직원들과 한국서 온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돌에는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그린에 해당하는 모래밭은 벙커C유를 부어 놓아 브라운 색이었다.

벙커도 없었다. 골프를 치다 보면 기름이 묻어 손이 온통 시커멓게 됐다. 사막의 라운딩, 그것이 경남기업과의 마지막 조우였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경남기업은 99년 8월 ㈜대우.대우통신.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 등 대우그룹 12개 주력 계열사의 일원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대우 채권단은 그 다음 달 경남에 1백68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경남은 아직도 워크아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생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 보인다. 부실의 후유증을 씻지 못하고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85년 2월 26일 이필선(李弼善) 제일은행장이 국제그룹 처리대책을 발표하던 날 나는 은행감독원장 발령을 받았다. 임원실의 한 직원이 인사가 났다며 라디오를 들고 들어왔다.

때마침 김만제(金滿堤) 재무장관(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1년만 맡아 주소. "

그 때만 해도 은감원장은 대단한 자리가 아니었다. 김장관이 국제 대책의 일환으로 나를 은감원장에 앉힌 것이다.

이듬해 1월 1년이 채 안 돼 그는 부총리로 자리를 옮기며 재무장관 자리를 내게 물려줬다. 부실기업 정리의 사령탑이 된 것이다.

다시 85년. 은감원장이 된 나는 다음 날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다. 국제그룹이 무너지면 중동 건설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나는 내 책임하에 처리하겠으니 "국제의 해외 채무에 대해서는 우리 은행들이 책임지겠다" 고 국제의 해외 거래은행들에 말해 달라고 은행장들에게 당부했다. 해외 채무를 떠맡는 데 따른 손실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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