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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학교] 4. 열린 평생교육기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 9일 오전 10시쯤 충북 충주시 여성회관 옆에 자립잡은 조그마한 건물 내 '한글학교' .

아저씨.아줌마 학생 10여명이 보름간의 임시방학을 끝내고 동료 학생.선생님을 만나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묻느라 교실안이 떠들썩하다.

96년부터 이 학교에 다닌 김연수(69.여.충주시 성서동)씨는 "예전에는 까막눈이라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지금은 소설책도 읽을 수 있어 새 세상을 사는 기분" 이라며 자랑했다.

학교가 학생들 뿐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가르치는 '평생교육기관' 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교사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해 한글.컴퓨터.지역문화 등을 지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 학부모.지역주민들도 교사들과의 거리감을 없앨 수 있어 호응이 높다.

충주 한글학교의 경우 한글을 몰라 불편을 겪는 지역 문맹자를 위해 1993년 전.현직 교사와 시민단체 회원 등 10여명이 설립했다.

현재 이 학교 교장인 류호일(柳浩一.39.충주여고)교사 등 11명의 자원봉사자가 교사로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자원봉사 교사들만도 30여명으로 지난 8년간 1백14명을 가르쳤다.

현재는 62명을 5개반(3년과정)으로 나눠 하루 두시간씩 지도하고 있다. 50~70대 여성이 대부분이고 20~30대 남자도 한두명 끼여있다.

이들은 한글 뿐 아니라 시청이나 동사무소서 민원서류 신청하기, 은행 입출금표 작성하기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교육을 받고 노래.종이접기.무용등도 배운다.

학교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은 교사회와 학생회가 서로 협의해 결정한다. 재정은 학생회가 전적으로 맡고 교사들은 수업과 관련된 일에 전념한다.

한글학교의 교육기자재 및 시설물은 모두 교사.학생 등의 기증품. 한글교재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편집한 교재와 인근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했던 2.3.4학년 국어교과서를 얻어 쓰고 있다.

제주도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제주흥산초등학교는 아예 학부모들을 학교로 초청해 교육을 한다.

이 학교가 지난해 3월부터 마련한 '학부모 교육프로그램' 을 통해 지금까지 3백40여명의 학부모들이 컴퓨터와 지역문화등을 배웠다. 2백여 가구에 불과한 마을 사정을 감안하면 대다수 학부모가 이 학교에서 재교육을 받은 셈이다.

학부모 현경선(玄京善.36.여)씨는 "이제는 아들(9)에게도 가르킬 수 있을 정도로 컴퓨터 박사가 됐다" 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사실 玄씨는 처음 학교에서 '학부모 교육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했을 때 "아이들이 배우는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다" 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요리교실.색종이접기교실에 참가하고 '어머니 PC교실' 에서 컴퓨터를 3개월간 배우고 나니 마치 대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수강료도 무료였다.

지난해 9월에는 학교가 마련한 '자녀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 을 따라 하룻동안 제주섬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며 새삼 고향의 숨결을 느끼는 기회도 가졌다.

교사들도 열성이다. 손수 강사로 나서는 것은 물론 마을의 행사와 잔치 때마다 주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 이 학교 고홍현(32)교사는 "배우려는 학부모의 의지와 교사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학교가 '평생교육기관' 으로 거듭나고 있다" 고 말했다.

충주〓조한필,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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