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리더들 희망은 불황보다 강하다] 7. 프로젝트 팀장으로 뛰는 김정주 넥슨 창업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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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오래 전 네덜란드의 한 상인은 '나침반 양탄자'를 발명해 큰 돈을 벌었다. 이슬람 신도들이 매일 다섯 차례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데 착안한 발명품이었다. 신도들이 기도할라치면 양탄자에 부착된 나침반은 항상 메카를 가리켰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케팅이 필수적인 세상이 됐다.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야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넥슨 창업주 김정주(37.사진). 그는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늘 고민한다. 회사 사장도 젊은 후배에게 맡기고 있다. 자신은 '프로젝트 A팀'의 팀장이다. 어린 고객의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나 '메이플 스토리'가 엄청난 인기다. 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왕따당할 정도다.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이 어린이들의 컴퓨터 조종에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며 풍선 폭탄을 쏜다. 때로는 비행접시를 타며 날아다닌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동시접속자 수 37만명으로 이미 최고기록을 세운 비앤비는 최근 중국에서도 동시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했다.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 신청이 돼 있는 상태. 올 9월 부산에서 'ITU텔레콤아시아'가 열렸을 때 영국의 슈테판 팀스 정보통신부 장관이 다른 IT업체들을 마다하고 넥슨만 방문했을 정도로 김정주는 게임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다.

93년 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정주에게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일찌감치 사업을 하는 게 낫겠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공부보다는 사업이 적성에 맞았다. 대학시절 학업보다는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안산공단에까지 가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부터 화학공장을 세우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는 것이 자본도 덜들고 더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박사과정을 6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 부모로부터 6000만원을 얻어 서울 역삼동 10평짜리 오피스텔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때가 94년 말. 한국IBM의 게임을 대신 개발해주는 게임개발 용역사업을 하고, 대기업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무려 5년간 고생해도 서광이 비칠 기미가 없을 무렵 9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바람의 나라'가 서서히 대박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99년 동시접속자 수가 12만명을 넘어선 것.

'바람의 나라'는 국내 최초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다.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과 호동왕자.낙랑공주 등이 나오는 전쟁이야기로, 당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였다. 그해 넥슨의 매출은 100억원을 넘었다. 당시에 소규모 게임회사가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넥슨은 그 후 만든 신작 게임들도 잇따라 히트시켰다. 그러나 김정주는 지금도 새로운 구상에 잠겨 있다.

그는 "'남들이 다 해서 이제 뭐 할 것 있겠나'라고 생각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어갔다. "아직도 새로 할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기존의 성공신화는 깡그리 잊고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왜 이런 것 하느냐, 그런 것 해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돼야죠."

정선구 기자

◆ 김정주 =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학과(석사)를 졸업했다. 친화력이 뛰어나 게임업계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 스키와 스노보드가 수준급.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 체육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넥슨의 지난해 매출액은 670억원. 순익은 210억으로 매출액 수준에 비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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