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세계가 숨죽일 4분 드라마 … 첫 점프가 승부 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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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을 하루 앞둔 25일(한국시간) 경기장인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마무리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뒤쪽에 경쟁자 아사다 마오(일본)가 보인다. [밴쿠버=뉴시스]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는 특별한 이름이 붙은 두 번의 대결이 있다.

‘브라이언 전쟁(Battle of Brians)’과 ‘카르멘 전쟁(Battle of Carmens)’. 공교롭게도 둘 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이 무대였다.

브라이언 오서(캐나다)와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가 격돌한 남자싱글이 ‘브라이언 전쟁’이다. 0.1점 차로 보이타노가 금, 오서가 은을 가져갔다. ‘카르멘 전쟁’은 여자싱글이었다. 세계선수권 우승자 카테리나 비트(당시 동독)와 준우승자 데비 토머스(미국)가 프리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똑같이 비제의 ‘카르멘’을 들고 나왔다. 비트는 금메달, 토머스는 동메달이었다.

22년 만에 캐나다로 돌아온 겨울올림픽에서 세 번째 ‘전쟁’이 시작된다.

20세 동갑내기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일본)가 그 주인공이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78.50점)가 아사다(73.78점)에 4.72점 앞선 가운데 26일 프리스케이팅에서 메달 색깔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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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에 대한 다른 접근=프로그램 기술요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점프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선수들은 일곱 번(콤비네이션 점프는 1번으로 계산) 점프한다.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로 시작, 트리플 플립으로 이어간다. 쇼트프로그램 때와 같다. 아사다의 경우 트리플 악셀로 시작, 곧바로 트리플 악셀-더블 토 루프를 뛴다. 일곱 번 점프의 기본점수는 아사다(44.3점)가 김연아(43.3점)에 1점 앞선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트리플 악셀을 뺀 나머지 점프를 정확하게 구사하고 점프의 높이도 높다. 콤비네이션 점프도 매끄럽다. 점프의 높은 완성도를 앞세워 가산점(GOE)을 노린다. 이에 반해 아사다는 여자선수 중 유일하게 최고난도인 트리플 악셀을 구사한다.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다른 점프의 완성도는 김연아에게 미치지 못한다. 가산점보다는 높은 기본점수를 선택했다.

◆긴장감과 체력이 변수=프리스케이팅에서 넘어지는 실수는 첫 점프에서 많고, 중반 이후 점프에서도 잦다. 첫 점프는 긴장감이, 중반 이후는 체력 저하가 주 원인이다. 첫 점프가 가장 중요하다.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단순히 1점 감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의 모든 연기에 부담을 안게 된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앞에 연기한 아사다가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계기록까지 세웠다. 김연아에게 긴장감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가 아사다 바로 앞에서 연기한다. 김연아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 아사다가 무리할 가능성은 있다.

◆꾸준함과 상승세 싸움=김연아는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에게 우승을 내준 이후 세 차례 만남(2009 4대륙선수권, 2009 세계선수권, 2009∼2010 그랑프리 1차)에서 모두 승리했다. 꾸준한 김연아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정상을 지켰다. 전 세계 피겨 전문가들과 언론으로부터 금메달 0순위로 꼽힌 이유다. 반면 아사다는 이번 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했다. 새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해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하지만 올림픽 직전 전주에서 열린 2010 4대륙선수권 우승으로 부활했고, 24일 쇼트프로그램까지 그 상승세를 이어갔다.

밴쿠버=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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