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특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생명으로 하는 젊은(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록밴드들을 인터뷰 하면서 어김없이 듣는 말이 있다.
"들어보면 안다" 라는 말. "당신들의 음악이 어떤 건지 독자들에게 좀 설명해 달라" 고 물으면 열팀이면 열팀 모두 그렇게 답을 하는 것이다.
반면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섹스 어필 강조형이나 댄스그룹들은 또 다른 형태로, 그러나 별로 설득력 없는 설명을 하곤 한다.
같은 맥락에서, 총체로서의 노래 자체가 아니라 그 가운데 가사만을 떼어내 분석하는 일부 평론가의 비평 역시 비평 자체는 재미있을지 모르나 음악 혹은 뮤지션 비평으로는 결정적인 한계를 갖는다.
영국에서 예술평론을 공부한, 그리고 그 자신 서태지(사진)의 팬임이 분명해 보이는 저자의 책은 그런 면에서 제한적으로 이해돼 마땅하다.
어떤 뮤지션을 분석하면서 "음악의 기술적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노랫말을 주요한 텍스트로 삼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으며 "서태지를 논할 때 '음악적' 잣대가 절대적 우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이상 12쪽)이라는 주장 역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많은 이론가와 이론들이 등장해 쉽게 읽히지 않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서태지가 '주류 문화에 대한 공격성' 을 가지고 소수 집단을 대표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 오히려 주류 문화에 당당히 편입했으며, 그같은 대표성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딕 헤브리지의 하위문화(subculture)이론을 주된 분석 틀로 삼아 서태지의 문화적 의미를 설명한 저자의 노력과 성과는, 지적 가벼움을 피하지 못하는 일부 음악비평가들의 서태지 분석에서 분명 진일보한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2백50쪽에 달하는 긴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의 표현이 좀 어려워졌을 뿐 그동안 많은 저널리스트와 비평가들이 내린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또 주된 분석 시기를 92~96년으로 한정했지만 현재 정말 필요한 서태지 분석은 많은 논란을 빚은 지난해 컴백 이후 서태지의 행로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최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