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대학 강사 '명함' 봤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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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부부의 겨울은 치열하다.

두 사람 모두 대학 강사로 겨울방학을 맞아 그동안 미뤄 놓았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논문을 써야 하고 다음 학기 강의 준비도 해야 한다.또한 글쓰기 등 이런저런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만만찮다.날씨가 추워져 놀이터에 나가지 않는 아이 둘과 계절 실업자 둘이 가뜩이나 비좁은 방구석에서 부대끼다보면 이래저래 짜증만 는다.

두 사람의 책만도 만만찮은 분량인 데다 책상도 큰 아이 것까지 합쳐 세 개다.학기가 끝나 성적을 내고서도 미처 치우지 못한 리포트와 시험지, 여기다 아이들 학습지까지 뒹구는 풍경은 영락없이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재해 지역이다.

답답해 바깥 바람이라도 쐴라치면 그나마 쥐꼬리만한 강의료 수입도 끊긴 대학 시간강사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결국 아이들과 컴퓨터 쟁탈전만 벌어진다.

컴퓨터는 네 대나 되지만, 인터넷이나 아이들 게임 CD가 실행되는 컴퓨터는 한 대 뿐이니 어쩔 수 없다.

다른 아빠들처럼 출근은 하지 않고 집안에만 박혀 있는 나를 쳐다보는 아들놈의 시선이 은근히 켕긴다.

컴퓨터 쟁탈전에서 패배한 가장은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와 하릴없이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되새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학기 초 교양 강좌 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라고 하곤 한다.

지식인으로서 '대학생' 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구란 말인가.

능력 없는 가장? 불효하는 아들에 든든하지 못한 남편? 불성실한 연구자? 학생들이나 몇몇 사람은 나를 '교수님' 이라 하지만, '강사' 라고 대놓고 할 수 없어 차린 예의 때문이라는 걸 나도 다 안다.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는 대학 강사는 전국에 3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대학 강사에겐 명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나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으레 주고받는 명함이 없어 간혹 손이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도리가 없다. 대학 시간 강사라고 소개를 할라치면 다들 이해하는 표정이다.

그게 어디 번듯한 직장이고 직함이어야 말이지. 이런 자기 정체성에 대해 대학의 시간강사는 혼란을 겪는다.

스승의 날에 맞춰 만평을 하나 그린 적이 있다.

모 신문사에 보냈는데 스승의 날 신문에 내기엔 너무 시니컬하다고 퇴짜를 맞았다.

저울 눈금이 0인 한 사람과 자신의 그림자가 없음을 보고 놀라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밑에 "무게도, 밟힐 그림자도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고 적었다.

선생의 권위가 추락하는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특히 대학의 시간 강사로서 느끼는 '선생' 의 위기는 심각하다.

학교 당국과 교수들에게 치이고, 학생들에게 밀리고, 심지어 정식 교원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제도에 소외된다. 여기다 돈도 잘 벌어오지 못하니 생활인으로서 가장의 위치까지 마구 흔들린다.

이런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고 전국의 대학 시간 강사들이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전국 대학 강사 노동조합' 은 1990년에 결성돼 우여곡절 끝에 94년 합법화했다. 그야말로 전국적인 단체지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나 활동은 그리 활발한 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의 시간 강사가 평생 직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 단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합의 '완전한 해체' 다.

하지만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수만명의 강사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문 후속세대의 단절, 그로 인한 지식기반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대부분 대학원의 입학 경쟁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 그를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 강사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덕분에 온 몸으로 대학 교육의 위기를 느끼고 산다. 이젠 나도 남들이 비록 알아주지 않더라도 명함이라도 하나 박아야겠다.

兪炳官(성균관대 강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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