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사망진단서,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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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8강전 2국> ○·저우루이양 5단 ●·이창호 9단

제15보(184~203)=전보에서 흑이 결정적으로 실수하는 장면을 다시 본다. 184로 밀고 들어왔을 때 185로 둔 수. 그리하여 186을 선수로 당한 것. 검토실의 프로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바로 그 장면이다. 184에 대해 ‘참고도’ 흑1로 막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이창호 9단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백이 2로 젖혀 잇는다면 그때 5로 두어도 된다. 쉬운 산술로도 이 그림과 실전은 최소 한 집의 차이가 있다. 세상을 떨어 울린 ‘신산(神算)’이 이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점을 두고 프로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반 집 불리’의 진단서는 ‘확실히 졌다”로 바뀌었다. 일류 9단 등이 서명한 사망진단서가 발급된 셈이다. 큰 끝내기도 이젠 없다. 국면은 서로 자잘한 선수를 교환하며 밋밋하게 흘러가고 있다. 200과 201은 3집 반의 크기가 비슷하다. 저우루이양 5단이 200을 선택한 것은 승리를 예감하고 두텁게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창호 9단은 초반에 실패한 이후 하루 종일 고전했다. 중반 이후 맹렬하게 추격했지만 끝내기에서 다시 막혔다. 지는 운명이다. 하지만 승부란 진정 묘한 것. 이 판 역시 마지막 장면에 믿기지 않는 드라마가 등장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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