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탈리아식 性희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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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한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죽었던 가지에선 꽃망울이 터진다.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농촌 들녘엔 짝짓기 하느라 정신없는 종달새들의 노랫소리가 흥겹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봄이 오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든지,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하는 한물간 유행가 가사는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태양 때문이다.

좀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해가 길어지면서 빛이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 생식선자극 호르몬을 분비시켜 생식활동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열적이고 감정적이며, 무엇보다 정력적이다는 평을 듣는 것은 바로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지중해 연안 소녀들의 초경(初經)이 북구지역에 비해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유럽의 전설적 플레이보이 카사노바가 이탈리아인이었던 것이 이렇게 보면 우연이 아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그대는 아는가, 저 레몬꽃 피는 남쪽나라를' 이라고 동경하며 두번씩이나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도 '태양〓정력' 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73세의 나이에 19세의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육체적 사랑을 느낄 정도로 평생 여성편력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던 괴테의 정력, 혹은 정열은 바로 이탈리아의 태양에서 온 게 아닐까. 그가 죽으면서 '좀 더 빛을!' 이라는 말을 남긴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탈리아 최고 형사항소법원이 며칠전 "돌발적이며 충동적인 경우 궁둥이를 가볍게 치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다" 고 판결해 화제다.

여성들로서야 발끈할 판결이지만, 과연 태양과 정열의 나라다운 판결이란 생각에 저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우조교 사건' 을 계기로 직장내 성희롱을 추방하기 위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성희롱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엔 육군 소장이 부하 여군장교를 성추행한 사건까지 터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행여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에 고무될지도 모를 남성, 혹은 여성 상사들은 그러나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한국은 결코 이탈리아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궁둥이를 만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음란한 눈빛으로 위 아래를 번갈아 쳐다보는 것' 도 경우에 따라 성희롱이 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봄, 여러모로 느슨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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