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신경림 '갈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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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67) '갈대'

정말 우리들은 무엇이 이리 바쁜가? 내 머리 속의 오늘은 무엇이 이리 복잡한가? 나는 몇 살이고, 어디에 있는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여기까지 밀려온 세월은 또 무엇인가?

언제 내가 나를 한번이나 조용히 들여다보며 내 삶을 뒤적여 보았던가?

외로워서, 내가 외로워서, 외로운 내가 외로운 나에게 눈물을 흘려주었던 일이 그 언제였던가?

허리 굽혀 신발 끈을 매는 이 아침 아, 나도, 살다가, 때로, 조용한 갈대가 되어 울어보고 싶은 것이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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