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아래 5남매 가족… 날마다 명절같은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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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가래떡 두 말에 쑥떡과 찰떡이 각각 반 말...'

광주시 남구 백운동에 사는 조삼례(68.여)씨가 챙기는 가족들의 설 떡 목록이다. 썬 떡을 부엌 바닥 광주리에 쌓아 놓은 모습이 웬만한 떡집 좌판 못지 않다.

그러나 조씨는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손자.손녀 등 자신과 함께 한 지붕 아래 식구만 20명인데다 손님까지 치러야하니 도리어 모자랄 것을 걱정한다.

조씨는 5년째 결혼한 5남매(2남 3녀)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동네에서 '오누이 빌라' 라고 불리는 그의 집은 지상 3층에 연건평 2백20평 규모. 일년에 생일과 결혼기념일 행사만 25번으로 날마다 명절 같다.

아들.딸.며느리.사위 등을 앞세우고 장보기에 나서면 조씨의 마음은 누구보다 든든해진다. 상인들도 조씨와 식구들을 알아보고 집안 어른 대하듯 한다.

조씨의 자녀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인 것은 1996년 12월. 장남 이명현(44.교사)씨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 전부 모이기가 힘든 데다 아이들의 가정교육이 걱정돼 함께 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이 더 보태는 식으로 땅 1백평을 사고, 자기네가 살 공간의 평수에 따라 8천만~1억3천만원씩 내 건물을 지었다.

조씨의 방이 있는 2층에 장남, 1층에 건축업을 하는 큰 딸네와 둘째 딸, 3층에 둘째 아들과 막내 딸 부부가 산다.

모두 교사인 장남 李씨 부부가 농어촌 벽지 근무로, 무역업을 하는 둘째 사위 이영욱(42)씨가 해외출장 등으로 집을 자주 비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모.이모.외삼촌들이 챙겨주기 때문이다.

아이들까지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데 공부는 사촌들끼리 경쟁이 붙어 성적이 모두 상위권이다.

막내 사위 김상대(36)씨는 "아이들 걱정없이 밖에서 부부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 집의 총무는 둘째 며느리 최연복(36.교사)씨. 매월 6만원씩 거둬 수도요금 등 공동 경비를 치르고 남는 돈 등을 모아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

자신들의 고향인 전남 화순군 청풍면 경로당에 3년째 난방비를 대고, 겨울철마다 동네 어른들을 온천 여행도 보내 주고 있다.

한 집에서 10만원씩만 내도 노인 30~40명에게 여행을 보내 줄 수 있다는 것.

친인척이나 사돈들이 한번 방문할라치면 다섯집 선물을 준비해야 해 지레 겁을 내는 게 걱정일 뿐이다.

어머니 조씨는 "홀로 된 지 11년이 됐지만 사람들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다복한 노인이라고 부러워한다" 고 자랑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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