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장석남 '그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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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를 만나면 자주

젖은 눈이 되곤 하던

네 새벽녘 댓돌 앞에

밤새 마당을 굴리고 있는

가랑잎 소리로써

머물러보다가

말갛게 사라지는

그믐달처럼

- 장석남 (37) '그믐'

보름달이 그믐달이 될 때까지 출렁이는 달빛을 밟으며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 본 적이 있는가.

그의 집 댓돌 앞에 서서 그를 부르지도 못하고 먼산에서 들리는 마른 가랑잎 소리나 등뒤로 듣다가 온 적이 있는가.

그래 본 이는 이 시 앞에서 말갛게 사라지는 그믐달 같았던 깨끗한 사랑의 추억에 미소 지으리라. 사랑은 어쩌면 이렇게 사랑 후에 오는지도 모른다.약오르게도 사랑은 꼭 한발 늦게 온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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