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총장 기자회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이 8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안기부의 구 여권 총선자금 지원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입장을 밝혔다.

수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 검찰 총수가 사건 성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더욱이 회견 내용이 지금까지 보도된 수사 결과를 반복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데다 주장도 원칙론에 그치고 있어 왜 느닷없이 회견을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朴총장은 이 자리에서 "선거자금 불법 지원 사건은 국가 예산을 횡령한 중대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 본질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여야를 막론하고 정략적 대응을 자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 줄 것" 을 강조했다.

朴총장의 발언은 너무나 당연한 원칙론이다.

그러나 무슨 의도로 기자회견을 했는지, 회견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기나 목적부터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지금까지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수사를 지휘해 왔기 때문에 새삼 검찰총장이 나설 계제가 아니었다.

이미 여야가 한창 진흙탕 싸움을 하는 마당에 사건의 정치 쟁점화를 뒤늦게 걱정하고 나선 것도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 이 사건은 성격상 누가 봐도 현 야당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수사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실무 책임자를 제쳐놓고 검찰총장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기자회견을 하는 일은 보다 신중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 탄압.보복 수사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마당에 무엇 때문에 정치 싸움판에 검찰총장이 끼어드는지 정말 안타깝고 답답하다.

검찰권 독립.정치적 중립을 위해 검찰총장은 국회 출석 증언조차 안하는 게 관례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최악의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은 이번 사건 수사 결과에 또다른흠집을 남길 우려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