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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울진 원시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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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계절 변함없는 푸른 솔잎 위에 소복히 얹혀 있는 하얀 눈.

하늘을 찌르듯이 당당하게 서있는 불그레한 줄기의 아름드리 소나무로 이뤄진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든다.

옛부터 소나무는 ‘민족수’(民族樹)로 불려졌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숲에서 살다가 소나무관에 담겨져 솔숲에 묻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전국의 산림에 병충해에 강한 활엽수가 많이 들어선데다 솔잎혹파리 피해 등으로 소나무가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드문 원시 소나무숲이 장관을 이룬 곳이 있다.백두대간 자락인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40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긴 골짜기인 불영계곡(연장 16㎞)과 연결되는 빛내골을 중심으로 삿갓재(해발 1천1백18m) 아래 4백80여만평의 국유림에 우리나라 향토 수종인 금강송(金剛松 ·일명 춘양목)1백여만 그루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강송(剛松)이라고도 불린다.일반 소나무에 비해 성장속도가 아주 느려 재질이 단단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 소나무의 나이테 간격은 5㎜∼1㎝ 정도지만 이곳의 소나무는 1∼2㎜로 매우 조밀한 것이 특징이다. 뒤틀리고 키가 작은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고 키가 큰 것 특징도 있다.껍질이 얇고 잘 썩지 않아 옛부터 고급 건축자재·관재(棺材)등으로 널리 사용됐다.

이곳 소나무들의 나이는 10년생에서부터 5백20년생까지이며 평균 수령은 1백50년이다.키는 6m에서 35m(국내 소나무 중 최고)까지로 평균 신장은 23m.직경은 작은 것이 6㎝ 큰 것은 1백10㎝나 된다.

이곳에서 나는 춘양목 한그루로 전통 가옥 한채는 너끈하게 지을 수 있을 정도다.소나무의 밑둥치가 어찌나 넓은지 소나무를 잘라 낸 그루터기에 장정 여섯명이 앉아 중참(中站)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마을 남의석(南義錫 ·54)씨는 “이 마을 주민들은 호랑이 등 맹수들의 습격에 대비,재질이 단단한 금강송으로 2중 미닫이 문을 하고 살아 왔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울진 국유림관리소 최종빈(崔鍾彬)소장은 “보통 소나무 가격은 ㎥당 1백80만원이지만 이곳의 소나무는 2백년생 한그루가 중형 승용차 한대 값(1천5백만원)은 된다”고 말한다.

이곳은 인공조림을 하지 않았지만 오지(奧地)라는 지역특성 등으로 숲이 잘 보존돼 세계 각국의 학자들도 자주 찾는다.

지난해 4월 강원도 동해안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울진까지 남하했을 때 산림청 직원 2백여명은 이 숲을 지키려고 2중 차단선을 설치하고 이틀동안 비상근무를 벌이기도 했었다.

경북대 임학과 홍성천(洪盛千)교수는 “팔공산 ·가야산 등의 소나무 군락지와 비교한 결과 토양 ·기후조건 등의 차이가 이곳 소나무의 질을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이 지역 토양이 풍화(風化)가 많이 진행된 부드러운 특징이 있는데다 부식질이 많아 소나무 성장에 적합하다는 것이다.또 인근에 큰 하천이 있어 습기도 적당하다는 설명이다.

소광리 소나무숲은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에 왕족이 죽으면 속이 누렇고 재질이 좋은 소나무(黃腸木)를 관의 재료로 썼다.이곳은 숙종 6년(1680년)때부터 황장목을 공급하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돼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

하지만 일제는 송진까지 짜내면서 이곳의 소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냈다.자유당 정권과 6·25전쟁도 산림훼손을 부추겼다.

춘양목이란 이름은 이 곳에서 벌채된 나무가 출발하는 기차역 이름(영동선 춘양역)에서 비롯됐다.

‘춘양목’이란 별칭이 금강송이란 본명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도 벌채가 얼마나 심했는 지를 보여준다.

다행히 1959년 농림부가 대관령과 이곳의 소나무를 육종림으로 지정했으며 82년에는 천연보호림(82-2호)으로 지정해 보존의 기틀이 마련됐다.

산림청은 또 지난해 이 곳을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보호에 나섰다.

이 숲에는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봄(3∼5월)과 가을철(11월1일∼12월20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특히 숲길 옆에는 1급수에서만 사는 버들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광천이 흐르고 있어 삼림욕을 즐기려는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에도 아주 적합하다.

054-783-1008(울진 국유림관리소)

울진=최준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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