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무료변론 변호사들 팔걷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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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내 대형 로펌(법률회사)들이 '프로보노(Pro Bono)'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프로보노 운동은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법률서비스 등 법조인들의 공익 활동을 말한다. 그동안 성장 위주로 경영해 온 로펌들은 공익활동에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름다운 재단 등을 통한 기부문화가 확산되면서 매년 수익의 일정액을 공익기금으로 조성하거나 변호사의 연간 공익활동 의무시간(20시간)을 기준보다 두 배 이상 하는 로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형사 소송이 주류=주로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보게 되는 형사.행정 사건을 지원하고, 개인 간 다툼인 민사소송은 배제하고 있다. 지난 4월 부산에서 지방 고등고시를 치러 2차까지 합격한 서울 S대 3년 김모(23)씨는 3차 시험을 앞두고 행정자치부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지역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응시 자격이 없다"는 이유였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공익위원회가 무료변론에 나섰다. 결국 "본적이 부산인 김씨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호적상 연고가 없어진 것일 뿐 실제 연고가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김씨는 1심에서 승소했다.

1년여 전부터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에서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 법무법인 충정의 고영신 변호사는 지난 9월 20대 초반의 정신지체 장애인 장모씨의 강간 고소사건을 맡았다.

고 변호사는 "검찰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씨를 정상인처럼 조사해 강간범들이 무혐의 처리됐다는 소식을 듣고 법률 지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씨가 장애인이어서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는 점을 항고 담당 검사에게 강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로펌들은 또 베트남에 정보통신 입법을 지원하고 북한의 개성공단 관련 법령 초안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김&장도 시민단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 수가 50명 이상인 로펌 7개를 포함해 큰 로펌들이 지원하는 공익소송만 연간 100여건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여전히 미미한 공익활동=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프로보노 활동이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 로펌 가운데 내부에 공익활동을 독려하는 공익위원회를 둔 곳은 김&장과 태평양 등에 불과하다. 2001년 7월 개정된 변호사법에 따라 국내 변호사들에게 연간 20시간의 공익활동이 의무화됐고, 매년 활동 상황을 변호사단체에 보고하게 돼 있지만 보고내용에 대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간 공익 활동을 최소 5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고 대다수의 로펌은 자사의 프로보노 활동 내용을 웹사이트 등에 종합해 공개한다. 매년 발표되는 프로보노 활동 순위는 로펌의 명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프로보노란=라틴 문구인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지난해 미국의 한 유력 법률회사가 '한국 스파이'로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로버트 김의 무료 변론을 맡아 화제가 됐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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