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피플] 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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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가 매해 선정하는 '올해의 최고 상품' 중 하나로 LG전자가 미국 시장에서 파는 개인휴대단말기(PDA)겸용 휴대폰이 뽑혔다.

폴립 뚜껑을 닫으면 휴대폰이 되고, 뚜껑을 열면 PDA가 되는 이 제품은 지난 10월부터 4백달러에 출시된 뒤 석달 만에 50만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의 강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디자인했다는 것. PDA와 휴대폰을 함께 갖고 다니는 비즈니스맨들로선 두 제품을 하나로 합치면 편리하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복합 기능을 갖춘 제품이 많은데 LG전자 휴대폰이 인기를 끈 것은 덩치가 큰 편인 PDA를 전화기처럼 작고 편하게 만든 디자인의 결과였다.

이 PDA 겸용 휴대폰을 디자인한 사람은 이노디자인(INNODESIGN)의 김영세(50)사장. 金사장은 미국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서 주로 활약하는 산업디자인 전문가다.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SA)가 주는 상을 세차례 받았다.

金사장은 최근 또다른 실험에 나섰다. 기업이 먼저 요청해 상품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하리라고 생각되는 상품을 먼저 디자인 해 이를 제품화할 업체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과거 일본 소니사의 워크맨이 '길거리에서도 음악을 듣고 싶다' 고 생각한 디자이너가 기업에 건의해 만든 신화를 다시 구현해 보자는 것이다.

"디자인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만들고 싶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던 시대는 지났어요. 이제는 소비자의 생각대로 상품을 만들어야 팔리는 시대입니다" .

金사장이 최근 디자인한 상품들은 바로 이런 소비자의 필요를 담고 있다.

'자전거를 탈 때 뒤에 누가 오는지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뒤를 돌아 보아야지. 뒤를 자주 돌아보면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金사장은 헬멧 뒤에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달았다. 헬멧 안경 오른쪽에는 뒷편의 영상이 그대로 나타나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볼 수 있다.

화면이 앞뒤로 회전하는 노트북도 비즈니스맨들이 찾던 물건이다. 요즘은 캐털로그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 상대방에게 설명하려면 노트북을 통째로 들고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화면이 빙빙 도는 노트북이라면 그 자리에 앉아서 화면만 돌리면 된다.

노트북.서류 가방 등 보안이 필요한 가방은 잠궈야 안심이 된다. 그런데 두툼한 잠금장치를 따로 달면 불편하다.

지퍼가 그대로 잠금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지퍼 고리를 잠금장치로 만든 아이디어로 金사장은 올해 IDSA 은상을 받았다.

PDA 겸용 휴대폰도 디자인을 개선했다. 좀더 작게 만들기 위해 폴립 뚜껑을 여는 것을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바꿨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합리적인 디자인 과정은 리스트럭처링의 기초'

'디자이너는 공장 아닌 시장에서 발상을 시작해야 한다'

'디자인의 경쟁력은 경쟁사의 트렌드 이해로 시작한다'

'고객 만족은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디자인의 방향과 마케팅 전략은 함께 간다' 가 그것이다.

金사장은 한국 상품이 세계를 제패하고 싶으면 해당 지역의 시장 정서를 잘 알고 그에 맞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金사장은 지난 4월 온라인으로 기업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제품.그래픽.웹사이트. 인테리어.액세서리 등 모든 부문의 디자인을 주문하는 회사 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25개국에서 1천7백여명의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참여하고 2백여개 업체가 디자인을 의뢰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상품을 팔려면 그 시장을 잘 아는 디자이너가 상품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그의 '디자인 현장주의' 를 실현하는 마당이 되고 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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