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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풍경] 서울 원지동 '이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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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르는 시기다. 한 분 한 분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밥 한끼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밑에 자리잡은 '이봉(以封.02-573-0420)' 은 음식점이 아닌 가정집 같은 곳이다.

대문 너머로 보이는 2층양옥 한 귀퉁이에 걸린 간판만 아니라면 고급 전원주택으로 착각할 정도다.

거실이나 안방의 식탁에 앉으면 청계산 쪽으로 탁트인 겨울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음식이 나오기 앞서 이를 전채요리 삼아 입놀림이 시작된다.

방석 아래에서 몸으로 올라오는 온돌방의 온기는 서먹한 사이라도 이내 서로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

식탁에 명란젓.포기김치.백김치.북어채 등 일반 가정의 밑반찬과 다를 것 없는 10여가지 찬이 오르면서 식사가 시작된다.

첫번째 코스는 쇠고기 주물럭 등심구이.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소리내며 익는 고기냄새가 뱃속의 시장기를 자극한다. 파무침과 함께 상추쌈에 싸서 입안에 넣으니 연하면서 씹히는 맛이 좋다.

다음은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두부 우유찜으로 입안에 넣기가 무섭게 부드럽게 부서진다.

쇠고기와 잣으로 멋을 낸 오이선이 이어지고 빨강.노랑색의 밀쌈이 있는 구절판이 나온다. 같은 내용물을 넣어도 빨간 밀쌈은 상큼하고, 노랑 밀쌈은 달콤하다. 뒤이어 바나나 튀김이 등장한다.

껍질을 깐 바나나에 고춧가루 양념옷을 입혀 튀긴 것인데 매콤.달콤…, 아주 묘한 맛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가정주부들이 손님을 초대해놓고 자신의 요리실력을 과시할 때 많이 등장하는 메뉴들이다.

본격적인 식사를 위해 나타나는 음식은 간장게장과 생태찌개. 두 가지가 동시에 식탁에 오르면 그동안 먹었던 것은 아랑곳없이 밥주발 속의 밥이 고스란히 뱃속으로 옮겨 담긴다.

게장은 짜지도 않으면서도 그윽하며 달콤하다. 특히 생태찌개는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 맛에 코끝에 땀방울이 맺힌다.

1인분에 3만원으로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대문을 나서면서 '다음엔 어느 분을 이곳에서 모실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방과 거실에 8개 테이블밖에 없어 예약을 안 했다간 결례를 범하기 쉽다. 오전 11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닫으며 설날과 추석날만 쉰다. 주차가능.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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