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2000년 바둑계 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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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000년 바둑계는 결국 이세돌3단이란 천재 소년기사 한명을 탄생시키고 저물어간다. 그 과정은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극적이었다.

22일의 2000년 바둑문화상 선정에서 이3단은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최우수기사(MVP)로 뽑혔다. 골인 지점까지 이어지던 이창호9단, 조훈현9단, 유창혁9단, 이세돌3단등 4강의 각축에서 이3단이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바둑문화상 선정과정을 중심으로 2000년 바둑계를 돌아본다.

▶최우수기사상(이세돌3단)=잉창치(應昌期)배 결승전은 이창호9단이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을 2대0으로 리드한 가운데 해를 넘기게 됐다. 만약에 이 결승전이 올해 다 끝나 예정대로 이창호9단이 우승컵과 함께 40만달러의 상금을 차지했다면 어찌됐을까.

이9단은 상금부문에서도 단연 선두였을 것이고 국내 1위의 전적과 함께 MVP도 저절로 따라갔을 것이다.

14일 유창혁9단이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패권을 차지하자 저울추가 유9단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유9단은 LG배 준우승도 있어 국제무대 활약이 단연 뛰어났다.

하지만 유창혁-이세돌이 2대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20일 벌어졌던 배달왕전 최종결승전이 결국 MVP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판에서 이세돌이 압승을 거두며 타이틀을 차지하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고 이 한판의 생생한 인상으로 인해 기자단은 17세 소년 기사 이세돌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다.

투표결과 총 19표중 이세돌 14표, 이창호 4표, 조훈현 1표가 나왔다. 1990년, 당시 15세였던 이창호는 조훈현을 꺾고 타이틀을 따내며 최연소 MVP에 올랐다. 그로부터 10년만에 이세돌이란 새 강자가 나타났다. 바둑계는 10년 터울로 판도가 변한다는 속설이 맞아 떨어진 것일까.

▶수훈상(이창호9단)=MVP를 놓쳤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계최강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창호9단에게 수훈상이란 이름은 어딘지 어색하다. 의미만 따진다면 오히려 TV속기에서 이창호9단을 꺾고 바둑왕이 된 목진석5단에게 이 상을 주는 것이 더 근사해 보인다.또 여성기사로서 이창호와 조훈현을 연파하고 사상 최초로 국수(國手)가 된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도 걸맞는 기사다. 그러나 그녀의 활약은 전반기에 집중돼 어느덧 기자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후반기 전적이 수상에는 아무래도 유리한 것이다.

투표결과 이창호 6표, 최명훈 5표, 유창혁 4표, 루이 2표, 목진석 1표가 나왔다.

▶감투상(최명훈7단)=타이틀매치 7번 도전만에 올해 최초로 LG정유배를 따낸 최명훈7단이 당초부터 유력한 후보였다.그는 10표를 얻어 6표를 받은 조훈현9단을 누르고 수상자가 됐다. 이외 芮9단,유창혁, 목진석이 각 1표.

▶신예기사상(이상훈3단)=올해 두개의 신예대회를 휩쓴 이상훈3단이 12표를 얻어 예상대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심배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의 선봉으로 나가 3연승했던 최철한3단이 3표, 승률2위 박영훈2단이 2표, 박카스배에서 이창호와 芮9단을 꺾고 결승에 올랐던 유재형4단이 1표.

▶여류기사상(芮乃偉9단)=루이나이웨이9단은 2개의 여자세계대회를 모두 휩쓸었고 국내에선 국수전과 여류국수전을 따내 남녀 통합국수가 됐다. 18표를 얻어 여류 명인 박지은 3단(1표)이 아직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다승기록상(이세돌3단)=71승을 거둔 이3단이 목진석(58승), 최철한(55승), 이창호(53승)를 크게 제쳤다.

▶승률1위상(이창호9단)=53승10패의 이창호9단이 승률 84.13%로 2위의 박영훈(80%)2단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연승기록상(이세돌3단)=이세돌이 1월부터 5월까지 한판도 지지 않으며 거둔 32연승이 최고.윤성현7단은 17연승,목진석5단은 16연승를 거뒀다. 이세돌은 MVP에다 기록부문 2개 상을 합해 3개의 금메달을 받게됐다.

▶아마추어기사상(하성봉7단)=올해 서울시장배등 4개 대회를 휩쓴 새얼굴 하성봉7단이 18표, 13세 아마국수 고근태군이 1표를 얻었다.

▶특별공로상(임갑 ·구자홍)=임갑씨는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30여년간 바둑 보급을 해왔다. 파리의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임갑씨와 함께 러시아 바둑보급에 큰 역할을 해준 LG전자 구자홍 부회장에게 이 상이 돌아갔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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