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공적자금 8조원 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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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미 받아 쓴 8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휴지' 로 만들어버린 부실 은행에서 노조가 공적자금은 더 받되 인원 감축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파업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정부는 18일 서울.한빛 등 공적자금이 들어간 6개 은행에 대해 완전 감자(減資)명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부실 책임을 물어 은행장을 비롯, 임원직을 대폭 교체할 방침이다.

감자 명령은 결국 국민 부담인 공적자금을 더 넣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법에 따라 인원 감축.임금 동결 등에 대한 노조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조는 동의서를 못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금융 구조조정이 공적자금만 삼킨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휴지가 된 공적자금〓정부는 1998년 서울은행에 1조5천억원을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한빛.평화은행 등에 모두 8조2천여억원의 공적자금을 집어넣었다. 이번 감자명령으로 주식가치가 0원이 되면 이 돈은 모두 휴지조각이 된다.

정부는 그간 이 돈을 회수 가능한 것으로 계산해 공적자금 중 회수 불능분을 60조원 정도로 추산했으나 이번에 이 돈을 모두 날리게 됨에 따라 손실분은 70조원이 넘어갈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2차 공적자금을 투입해 6개 은행의 경영 정상화가 제대로 되고 주가가 오르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고 밝혔다.

그러나 1, 2차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려면 현재 1천원을 밑도는 6개 은행 주가가 최소 몇만원은 돼야 하기 때문에 이는 몇년 안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증권업계의 지적이다.

◇ 노.정 갈등 고조〓금융노조 이용득(李龍得)위원장은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 편입을 통한 평화은행과 지방은행의 퇴출, 은행원 감축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22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것" 이라며 "파업에는 평화.광주.제주.경남은행과 최근 정부가 강제 합병을 추진 중인 국민.주택은행 등이 참여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위 관계자는 "지난 정기국회에서 제정된 공적자금 관리 특별법에 따라 노조가 임금 동결.인원 감축 등의 동의서를 내지 않을 경우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능하다" 며 "그런 은행은 대우자동차처럼 치명적인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고 밝혔다.

이정재.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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