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 고개 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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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기에게 먹일 분유를 훔친 주부, 배가 고파 쌀을 훔친 무직자...

뒤숭숭한 연말 분위기에 극심한 불황이 겹치면서 염치 불구하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다 애써 지어 곳간에 둔 벼 등 농산물을 훔쳐가는 절도범도 활개를 치고 있다.경찰은 연말 특별검거기간을 설정,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생계형 범죄=지난달 22일 주부 鄭모(21)씨는 대구 달서구 이마트에서 분유와 유아용 로션을 슬쩍 하다 보안요원에 걸렸다.

鄭씨는 “단칸 사글세방에서 어렵게 살다 보니 한살배기 아들의 유아용품을 사줄 능력이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새벽 文모(28)씨는 대구 내당동 H갈비집의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다 경비회사 직원에게 붙잡혔다.경찰 조사결과 文씨는 최근 일거리가 없어 끼니를 거르다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쳐먹기 위해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날품팔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李모(36 ·울산시 남구)씨 등 2명은 지난 7일 울산의 모 교회 창고에서 쌀 16㎏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李씨 등은 “겨울이 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교회에서 주는 하루 한끼만으로는 배가 너무 고파 쌀을 훔쳤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엔 밀양시 산내면 국도 24호선 남명경찰초소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 3만5천원어치를 넣은 뒤 돈을 주지 않고 달아나던 李모(36 ·대구시 동구)씨가 실탄을 쏘며 뒤쫓아간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농산물까지 훔쳐간다=창녕경찰서는 지난달 15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웃 주민의 벼 21포대를 훔친 金모(25 ·창녕군 유어면)씨를 구속했다.

산청경찰서는 지난달 23일 농촌에서 양봉 벌통 3백여개를 훔쳐 헐값에 다른 양봉농가에 판매한 姜모(29)씨를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또 지난 7일엔 예천군의 朴모(32)씨가 같은 마을의 金모(32)씨 창고에서 벼 70포대를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남지역엔 올들어 농기계나 농사용 장비 절도도 6건이나 발생,4명이 구속됐다.

◇대책=이쯤 되자 경북경찰청은 다음달 15일까지를 농축산물 도난사건 특별검거기간으로 설정,전담반을 구성해 예방과 범인검거에 들어갔다. 경북경찰청은 올해 개 도난 58건, 벼 36건,고추 ·마늘 ·콩 ·깨 15건,과일 8건 등 모두 1백38건의 농 ·축산물 도난사건을 접수,수사중이다.

또 대구경찰청은 연말연시를 맞아 강 ·절도범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생계형 범죄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기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허상천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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