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찰 인사파동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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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금성 서울경찰청장이 취임 사흘 만에 옷을 벗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은 이번 인사 파동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이무영 경찰청장은 지난 11일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번 경찰 인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박금성 서울경찰청장)인사와 관련해 미안하다" 고 말했다. 그는 "朴청장의 능력을 인정해 임명했는데… 결과적으로 학력 등을 검증하지 않은 것은 잘못" 이라고 덧붙였다.

최인기 행정자치부 장관 역시 12일 열린 국회 예결특위에서 같은 취지로 다섯차례나 사과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이렇게 '자책' 까지 나오게 된 것은 과거의 관행이나 패러다임에 젖어 인사를 단행한 탓이다.

물론 박 전청장의 사퇴는 학력허위 의혹에 따른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번 경찰인사가 과거의 관행이나 패러다임에 젖어 무리하게 단행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지난 6일 정부가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에 모두 호남 인사를 배치한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이 터져나왔을 때 경찰측의 반박 논리는 단순했다.

"문민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권들도 이 두 자리를 영남 인사로 채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는 것이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현 정권이 힘이 약하다보니 과거에도 관행처럼 이뤄졌던 일마저 매를 맞는다" 고 한탄했다.

이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경찰 중립성' 에 대한 기대치도 과거보다 높아졌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인사를 앞두고 한 호남 출신 경찰간부는 "이무영 경찰청장이 유임된다면 서울경찰청장이나 경찰청 차장에는 호남 사람을 임명하지 않을 것" 이라고 전망했었다. 중립성을 의심받는 경찰 인사는 내부에서조차 납득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실 지난 10월부터 경찰 간부들의 관심은 온통 인사에 쏠려있었다. 그만큼 민생 치안은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셈이다.

인사철만 되면 경찰 조직 전체가 뒤숭숭해지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고도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15만 경찰의 인사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현재 경찰청장 임명에만 관여할 수 있는 경찰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경찰의 중립성을 위해 만들어진 이 위원회에서 경무관급 이상 인사만이라도 제대로 심사한다면 경찰 인사는 한결 투명해질 것이다.

강주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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