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책의 흐름]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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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아이가 삶의 구심점이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태양계의 행성이 바로 그의 삶이었다. 만일 아이를 잃게 된다면 자신이 원심력에 의해 세상 밖으로 떨어져버리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살아야 할 숱한 이유들 대부분을 잃어버린 채, 세상 속에 뒤섞여 웃고 떠들고 노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대 정신도, 사회 정의도, 가족간의 사랑이나 유대도 없이, 그래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이 모래알 같이 뿔뿔이인 세상이어서 그런가.

가족간의 뜨겁고도 눈물겨운 사랑을 그린 '가시고기' 와 '국화꽃 향기' 가 올 소설 시장을 석권하며 우리가 얼마나 헌신적인 사랑에 목말라 하는가를 반증했다.

'가시고기' 는 위 한 대목처럼 '아이가 삶의 구심점' 인 한 아버지의 목숨까지 내건 아들 사랑을 다룬 작품. 아들 하나 부양할 능력이 없어 자살한 아버지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열살 난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있다.

아내와 아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주목 받는 시인으로서 시도 포기했지만 아내로부터 이혼 당한 그는 필사의 노력과 지극한 사랑의 간병으로 아들을 되살린다. 그러나 자신은 결국 암으로 죽어간다.

'국화꽃 향기' 는 암으로 죽어가는 연상의 아내에 대한 라디오방송 PD의 지극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임신한 채 암에 걸린 아내는 2세의 탄생을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한다. 그런 아내를 위해 주인공은 직장도 버리고 한적한 바닷가 폐교에서 아내를 간병한다. 그 결과 건강한 딸을 낳고 아내는 죽어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두 작품 모두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들과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그리며 독자들을 울리고 있다. 울면서 정에 메마른 우리 사회를 흠뻑 적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극적 작품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 효과다. 20.30대의 여성 독자들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도 이 작품에 빠져들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며 '신유목사회' 로 접어들지도 모를 사회를 이끌어갈 신세대들이 가족의 진한 사랑에 빠져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거의 무명인 작가의 이른바 통속소설이다. 흐름이 뻔히 보이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곳곳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른바 '통속장치' 를 설치해놓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나 문체를 신세대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맞춘 것이 이 작품들을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을 문학동네에서는 '통속소설' 로 외면할 것이 아니라 대중성, 혹은 통속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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