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대표적 과잉체제 은행·보험등 통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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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재 일본 경제계에는 두가지의 큰 얘깃거리가 있다.

하나는 1999년 3월 닛산자동차의 주식 37%를 54억달러에 인수한 프랑스 르노사의 성공담이다. 르노는 닛산에 카를로스 곤을 사장으로 파견해 지난 1년동안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는 6천8백억엔의 적자를 2천5백억엔의 흑자로 바꿔놓았다.

또 하나는 일본기업들의 이른바 '적과의 동침' 이다. 험난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 기업들은 필요한 경우 재벌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적대관계에 있는 그룹의 기업들과도 파트너 관계를 맺어왔다.

최근 들어 일본에는 외국인의 직접투자(FDI)가 몰리고 있다. 지난해 투자액만 하더라도 르노의 닛산 투자를 포함해 98년의 두배가 넘는 2조4천억엔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나 증가한 1조9천억엔을 기록했다. 이중 40%는 은행.보험.증권.리스 등 금융산업에 몰렸다.

외국인의 대일 직접투자 러시는 일본 기업들의 경영방식에도 커다란 영향과 자극을 줬다.

닛산의 최고경영자 곤의 획기적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나 장기신용은행을 인수한 미국 리플우드의 서구식 경영방식은 일본 기업에도 국제화된 경영기법의 도입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고, 외국기업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하는 경영과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그룹의 기업들과도 손잡고 제휴하는 '계열파괴형 산업재편' 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적과의 동침' 현상은 은행권이 시발점이 됐다. 2~3개 은행씩 짝지어 초대형 은행으로 탄생하거나 지주회사 밑에 놓이게 되는 합종연횡이 이뤄졌다. 결국 총자산 규모에서 세계 10위안에 드는 은행이 4개나 나왔다.

미쓰이 계열의 사쿠라은행과 스미토모그룹의 스미토모은행이 통합해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출범한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계열파괴의 사례다. 은행의 통합에 따라 계열 손해보험회사인 미쓰이 해상과 스미토모 해상의 합병도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일본 화학업계 2위인 스미토모 화학과 3위인 미쓰이 화학이 최근 통합해 1위인 미쓰비시 화학을 제치고 일약 세계 6위의 화학회사로 발돋움한 것이다. 뒤퐁.BASF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미토모 그룹과 미쓰이 그룹은 최대의 라이벌 관계다. 하지만 과감한 변화와 개혁 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두 대형 화학회사는 '계열의 벽' 을 넘어섰다.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영역이 의약.농약.전자재료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통합의 자극제로 작용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유화산업은 어떤가.

한마디로 '과잉체제' 라고 할 수 있다. 과당경쟁에 따른 과다부채, 과잉투자의 결과물인 과잉생산체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한 만성적자 구조를 타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근의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는 바람에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재벌마다 이뤄지고 있는 중복투자를 과감히 청산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나 보험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적과도 기꺼이 동침해야 한다.

"변화해야 할 것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소서" 라고 하느님께 간구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 새삼 떠오른다.

홍인기 <인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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