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루이가 김정일 면담한 다음날 … 김계관은 베이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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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북한을 방문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8일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만나 면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왕자루이는 “한반도핵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했다. [함흥 AP=연합뉴스]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9일 중국을 방문, 14개월째 공전 중인 6자회담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부상은 전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뒤 이날 귀국길에 오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같은 평양항공 여객기 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한 뒤 주중 북한대사관이 제공한 차량으로 곧장 공항을 빠져나갔다. 북한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이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영어 전문 통역사인 최선희도 김 부상과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당국자는 “김 부상의 방중을 사전 인지하고 있었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북핵 정세가 완화돼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베이징 외교가에선 김 부상과 중국 정부 간에 6자회담 재개 문제가 집중 논의돼 급물살을 탈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다.

이에 앞서 왕 부장은 방북 사흘째인 8일 저녁 함흥에 머물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중국 신화통신은 “왕 부장이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핵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와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후 주석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선 당사국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우리는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더 강화해 나가길 바란다”고도 말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면담 사실만 간략히 보도했다.

공개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10월 방북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나 지난해 12월 방북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말한 수위를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이 김 위원장과 면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을 끌어내지는 못했으며, 경제 지원과 김 위원장의 방중 등이 집중 논의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김 부상의 9일 방중도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상은 베이징에서 6자회담 의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왜 함흥에서 만났나=왕 부장과 김 위원장 면담은 외교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함흥에서 이뤄졌다. 중국의 공식 사절인 왕 부장이 평양을 찾았는데도 김 위원장은 승용차로 5시간 거리의 함흥에 계속 체류했다.

결국 왕 부장은 방북 사흘 만에 함흥으로 달려가 김 위원장을 면담했다. 과거 네 차례 왕 부장이 방북했을 당시 김 위원장은 줄곧 평양에서 그를 맞았다. 외교가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왕 부장에게 ‘핵문제를 거론하겠다면 만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거나, 만남이 부담스러워 피한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그런 김 위원장을 왕 부장이 함흥까지 따라가 애써 설득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함흥 회동’에 대해 “6자회담에 나갈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북한과, 핵문제 언급 없이 지나갈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이 절충된 결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함흥에서 왕 부장을 맞음으로써 미국 등 다른 관련국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메시지를 보낸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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