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북한을 방문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8일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만나 면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왕자루이는 “한반도핵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했다. [함흥 AP=연합뉴스]
이에 앞서 왕 부장은 방북 사흘째인 8일 저녁 함흥에 머물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중국 신화통신은 “왕 부장이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핵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와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후 주석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선 당사국들의 성의 있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우리는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더 강화해 나가길 바란다”고도 말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면담 사실만 간략히 보도했다.
공개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10월 방북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나 지난해 12월 방북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말한 수위를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이 김 위원장과 면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을 끌어내지는 못했으며, 경제 지원과 김 위원장의 방중 등이 집중 논의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김 부상의 9일 방중도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상은 베이징에서 6자회담 의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왜 함흥에서 만났나=왕 부장과 김 위원장 면담은 외교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함흥에서 이뤄졌다. 중국의 공식 사절인 왕 부장이 평양을 찾았는데도 김 위원장은 승용차로 5시간 거리의 함흥에 계속 체류했다.
결국 왕 부장은 방북 사흘 만에 함흥으로 달려가 김 위원장을 면담했다. 과거 네 차례 왕 부장이 방북했을 당시 김 위원장은 줄곧 평양에서 그를 맞았다. 외교가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왕 부장에게 ‘핵문제를 거론하겠다면 만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거나, 만남이 부담스러워 피한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그런 김 위원장을 왕 부장이 함흥까지 따라가 애써 설득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함흥 회동’에 대해 “6자회담에 나갈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북한과, 핵문제 언급 없이 지나갈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이 절충된 결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함흥에서 왕 부장을 맞음으로써 미국 등 다른 관련국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메시지를 보낸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정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