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현씨, 해외유령사 내세워 종금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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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검찰 조사 결과 MCI코리아 진승현(陳承鉉.27)부회장은 외국에서 배워 왔다는 '선진 금융기법' 을 사기극에 동원, 투자자와 금융감독원을 우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마 외국의 유령회사에 돈을 보내고 그 회사가 한국에 투자하는 것처럼 알려 주가를 조작하는 것이 선진 금융기법인 모양" 이라고 혀를 찼다.

陳씨는 고려대 무역학과 2학년을 마친 뒤 1995년부터 3년간 미국.홍콩.러시아 등 외국을 돌아다니며 금융 기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은 "陳씨가 자주 사석에서 자신이 미국에서 국제금융 강의를 듣고 실무를 익혔다고 주장했다" 고 소개했다.

陳씨는 외환위기 이후 선진 금융기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98년 귀국해 자신의 해외 경험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기업 인수에 나섰다.

陳씨의 아세아종금 인수 작업은 스위스 소재 '오리엔털 제이드' 라는 소규모 무역회사의 명칭을 'SPBC(Switzerland Private Banks Consortium)' 로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자본금이 한국 돈으로 3천만~4천만원, 이익 잉여금도 3억~4억원에 불과해 한국에 투자할 능력이나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陳씨는 마치 스위스 민간 은행들이 종금사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처럼 속였으며, 이들이 한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는 가짜 '팩스 문서' 를 증거물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스위스 자본을 유치한다는 陳씨의 제의에 따라 아세아종금 대주주였던 대한방직 설범 회장 등은 주식 8백60여만주를 단돈 10달러에 陳씨에게 넘겼다.

이같은 방법으로 아세아종금 경영권을 장악한 陳씨는 아세아종금에서 인출한 자금을 SPBC에 송금했다가 다시 국내로 들여왔다.

사실상 망한 상태인 종금사의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외국회사의 투자금 형식으로 국내에 다시 들어오는 희대의 사기극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陳씨가 유령회사를 내세워 아세아종금을 인수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아세아종금 감사였던 신인철(申仁澈.구속)씨의 도움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세아종금 임원이면서도 이미 陳씨 편이 된 申씨는 ▶SPBC의 실체나 자금동원 능력을 문제삼지 않고▶陳씨가 아세아종금으로부터 우회대출을 받도록 적극 주선해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陳씨는 申씨가 이같은 도움을 준 사례비로 지난 4월 20억원을 줬다.

결국 '선진 금융기법' 을 활용한 陳씨는 '20억원+10달러' 로 대한방직 薛회장이 갖고 있던 시가 1백억원 상당의 아세아종금 주식을 넘겨받아 대주주가 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陳씨가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 해외자본 투자라면 무조건 환영하는 분위기를 이용해 이같은 사기극을 벌인 것 같다" 고 진단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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