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칠순의 벤치코치 돈 짐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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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 월드시리즈를 석권한 양키스의 덕아웃에는 돈 짐머라는 70세 '노인' 코치가 늘 감독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벤치코치다.

짐머는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컵스 등에서 감독생활을 하다 은퇴했는데 1995년 조 토리 감독이 양키스로 부임하면서 '모셔온' 원로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감독의 자문역. 작전이나 팀운영에 관해 조언한다. 그러나 손자 같은 선수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들려주는 일이나 코칭스태프를 경륜과 위엄으로 통솔해 감독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짐머는 다저스 2루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 통산 91개의 홈런을 포함해 2할3푼5리의 타율을 기록했고 감독으로서 8백85승 8백58패의 기록을 남겼다.

56년 양키스와의 지하철 시리즈에 참가한 후 44년 만인 올해 메츠와의 지하철시리즈에 참가하는 '행운' 도 누렸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후배감독 밑에서 제 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는 짐머 코치야말로 한국프로야구 입장에선 부럽기만한 존재다.

우리 풍토에선 선배가 후배 밑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후배도 선배 모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최근 40대 감독들이 늘어나면서 일부 구단에서 메이저리그처럼 경험 많은 원로감독들이 벤치코치를 맡아 경험과 경륜을 전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도 메이저리그의 벤치코치와 비슷한 수석코치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감독들보다 후배여서 스포츠맨 사회의 정서상 거리낌없이 제 의견을 피력하거나 조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감독들은 늘 혼자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도맡아야 한다.

경제위기 등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한 김대중 대통령의 처지가 승부처를 맞은 감독들의 상황과 흡사해 보인다.

대통령은 위기에서 벗어날 묘수가 절실한데 수석코치인 총리, 코치들인 장관, 당료들은 입을 다문 채 감독의 심기만 살피고 있다.

대통령은 일부 코치들을 교체해 분위기 쇄신을 노리려 하나 그들이 얼마나 소신있는 행정을 할지 의문이다.

이럴 때 대통령에게 짐머 같은 벤치코치가 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됐을까. 새삼 토리 감독의 혜안이 두드러져 보인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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