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탐방기 ① 천안 재래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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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자 할머니가 곶감을 보여주며 국산·중국산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국산이 가격은 좀더 비싸지만 맛과 품질이 좋다고 했다. 아래 왼쪽사진은 약과를 만들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좌판에 진열된 전. [조영회 기자]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앞둔 인턴기자가 설 명절을 앞두고 천안과 아산의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20대 중반의 그가 부모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게 10여 년 만이라고 합니다. 시장 곳곳을 꼼꼼하게 관찰하려 노력했습니다. 대형마트 쇼핑과는 다른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시장 가는 날인데 하필 비가 온다. 이런 날 재래시장은 ‘질척거리는 바닥에, 장바구니에, 우산에, 번잡하고 정신 없다’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근데 우산을 접고 들어서도 비가 오지 않는다. 천장에 설치된 ‘무엇’때문이다. 바로 아케이드다. 비 오는 날에도 재래시장 쇼핑 문제 없다. 오히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아케이드에 켜진 백열등이 운치를 더해준다. 덕분에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난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귀에 익은 가사에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맛깔 나는 트롯이 분위기를, 흥겨움을 돋우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남산중앙시장은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형마트보다 품목 많아

큰 통로에 길게 늘어선 점포와 좌판들. 상점마다 백열등 밑에 번호판 하나씩 달고 있다. 찾기 쉽겠다. 오는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단골집 번호 하나씩 가지고 있을 듯하다. 나는 17번, 너는 26번 이런 식으로.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났다. 한과 튀기는 소리다. 가게 안에서 직접 쌀가루를 반죽해 한과를 만든다. 깨강정과 매작과다. 가게 앞에 진열된 오색 한과가 눈길을 끈다. 옛날 방식으로 쌀을 튀기고 강정을 버무렸다고 한다. 화려하게 생긴 한과들은 딴 데서 사서 들여온 것도 있다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요즘엔 식구들이 적으니깐 손님들이 예전처럼 강정을 많이 사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로 조금씩 사 가신다”고 했다. 사람들이 와서 "대형마트보다 물건이 다양하다. 거기엔 없는 물건이 많다”고 할 때 뿌듯하단다.

“중국산 보다 국산이 맛은 좋지!”

강정집 건너편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안윤자(67)씨. 곶감 가격을 묻자 ‘제각각’이란다. “중국산, 국산 다 있는데 가격이 어떻게 같냐”며 곶감 고르는 요령을 설명해준다. 보통 국산이 중국산보다 두 배는 비싸다. 대신 열 배는 더 맛이 좋다고 한다. 국산은 한 상자(60개 들이)에 3만원, 중국산은 1만5000원 가량이다. 국산을 낱개로 사면 한 개에 500원 가량이다. 맛을 보라고 곶감 한 개를 건넨다. 재래시장 인심이다. 손님들이 이것저것 가격을 한참 물어보지만 이내 생각했던 가격이 아닌 듯 망설인다. “사람들이 국산 가격 물어보고 꼭 중국산 사간다니까.” 주인 안씨가 장난스럽게 투덜댔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전집이다. 주인 송순자(65)씨와 남편, 딸이 함께 전을 부치고 있었다. 십여 년간 이곳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 “명절 4~5일 전부터는 가게 앞에 줄 서야 돼요. 우리 가게 앞에 양쪽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요” 송씨의 자랑이다. 요즘 집에서 직접 전을 부치기 보단 시장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시간도 품도 많이 드는 전. 시장에 와 보니 사 먹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새삼 느꼈다. 송씨는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이 사간다”고 했다. “요즘엔 며느리가 명절 때 안 오는 집도 많고, 그렇다고 어르신 혼자 하시기엔 힘드니까.”

명절땐 가게 앞 줄서는 전집

전 가격은 종류 상관없이 1㎏당 만원. 집에서 하는 것 못지 않게 정성껏 전을 부쳐준다. 보통 명절용 전으론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사가면 적당하다고 했다. 제사상에 올리는 전 종류가 다양한 만큼 송씨가 부치는 전 종류도 이것저것이다. 동태전·꼬지·동그랑땡·버섯·두부·호박전까지.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전은 다 한다. 명절 땐 특히 녹두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번 설은 연휴가 짧은 탓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맞벌이 며느리들의 ‘러브 콜’이 평소보다 늘었다. 일찍부터 제사용 ‘한 상’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주 품목인 전을 비롯해 생선·나물·과일 등 모두 포함해 한 상은 25만원 가량이다. 명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많이 사간다고 한다. 저녁 찬거리로 3000원 가량 구입하면 네 가족 한끼로 충분하다.

장을 보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곳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포장마차.’ 기자도 이날 동행한 이들과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켰다. 안주로 먹은 순대와 굴이 일품이었다. 옆자리에는 세월의 시름을 이기려는 아저씨들이 한 잔씩 거하게 마시고 있었다. 시장을 나오면서 생각이 들었다. “또 와야겠다.”


전화주문제·무료택배
쇼핑 편리성도 마트 누르겠다

재래시장에서도 대형마트 못지않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천안 남산중앙시장상인회는 올해부터 3만원 이상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택배서비스와 함께 전화주문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장을 보기 어려운 고객을 위해 250여 상인들이 한 달에 2만 원씩 내는 회비와 주차장운영 수익 등으로 무료택배와 전화주문제도를 운영키로 한 것. 무료 택배를 희망할 경우 점포에서 3만원 이상 물품을 구입해 배달을 요청하거나 상인회(041-555-1137)에 전화로 점포와 품목을 지명, 주문하면 전국 어디나 배송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현대택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상인회는 무료택배제가 정착되면 인터넷 주문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천안시는 시행결과에 따라 지역 11개 전통시장에 택배와 전화주문제 시행을 협의할 계획이다.

상인회는 “그동안 대형마트의 물량공세와 마케팅에 전통시장이 위세가 눌렸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노력하겠다”며 “인터넷 주문을 위해 전자상거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와 가격경쟁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쇼핑 편의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젊은 고객들의 발길을 쉽게 끌지는 못해 왔다. 재래시장은 앞서 비 가림 시설(아케이드)을 갖추고, 신뢰성 확보를 위한 가격 및 원산지 표시제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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