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정권 10년 더 가야 4만 달러 시대 열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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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서울시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 서울시가 세계적인 대도시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힘들다”고도 했다. [사진=신동연 기자]

23~24일 서울에선 세계디자인도시서밋(Summit)이 열린다. 세계산업디자인총연합회(ICSID)란 단체가 서울을 2010년의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한 데 따른 행사다. ICSID는 세계의 산업디자인계를 이끌어가는 인사 15만 명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단체다. 행사엔 토리노·부에노스아이레스·헬싱키·몬트리올·베이징·고베 시장 등 30여 개 도시의 대표단이 참석한다.

서울 서밋을 이끌어낸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난 4일 만났다. 시장 집무실 옆에 딸린 간부회의실에서다. 오 시장은 청색 계열의 양복에 블루 셔츠, 파스텔톤이 감도는 넥타이 차림이었다. 인터뷰는 1시간30분가량 이어졌다. 점심 약속시간을 늦춰가며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창조와 도전정신을 말했다.

“원도 한도 없이 일했다” “서울시를 바꾸는 데 미쳐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 시장의 목소리 톤은 높아졌다. 손놀림도 커졌다. ‘전시행정’이란 비판엔 불쾌해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천박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서울 적수는 런던·파리·뉴욕
-서울이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됐지요.
“디자인 도시로서의 브랜드마케팅이 먹혀들기 시작했다는 증표죠. 연초 ‘월페이퍼(WallPaper)’란 잡지는 서울을 베를린·뉴욕·이스탄불·로테르담과 함께 세계 5대 디자인 도시로 올려놨어요. 뉴욕 타임스는 올해 꼭 가볼 만한 도시에 서울을 세 번째로 언급했고요. (한 나라가)화두를 선점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국가가 아니라 대표 도시예요. 프랑스를 떠올리면 파리가 먼저 떠오르죠. 파리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프랑스의 국가 브랜드죠. 아마 중국을 떠올리면 요즘엔 상하이가 떠오를 거예요. 상하이는 중국의 특별한 케이스일 뿐인데, 사람들은 상하이의 이미지를 중국의 이미지로 생각하잖아요.”

-이번 서밋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해 가는 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데 이번 서밋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디자인의 최첨단 트렌드를 보려면 서울로 가라’ ‘대한민국이 디자인 선진국’이란 브랜드를 선점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먹고사는 데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과제가 되는 거죠.”

-왜 디자인에 착안하게 됐습니까.
“요즘 (국민이) 해외여행 많이 가시는데 주로 어떤 도시에 가세요? 결국 멋진 도시, 쾌적한 도시, 편리한 도시를 찾아가지 않습니까. 사람이 몰리고 정보가 몰리는 도시, 자본이 몰리는 도시가 결국은 미래 도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 세 가지를 끌어모으기 위한 공통요소 한 가지만 대라고 하면 디자인이에요. 이제 매력이 없는 도시에는 돈, 사람, 정보가 몰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서 몇 년째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 생존전략을 어디에서 풀어나갈 것이냐는 화두를 던지면, 결론은 디자인으로 갑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뤘다는 걸로 울궈먹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거든요. 그것이 미래 경쟁력이 될 순 없어요.”

-일부에선 전시행정, 디자인 행정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표정이 굳어졌다.)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척박함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언급이라고 생각해요. 또 선거가 다가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몰라서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아닐 거예요. 설마 시장에 나오시는 분들이 그 정도 공부도 안 했겠어요? 알고도 선거가 다가오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원도 한도 없이 일했다”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했는데요.
“서울의 민선시장 하신 분들 중엔 재선한 분이 없지만 세계적인 도시를 보면 오히려 서울이 아주 희한한 도시예요. 어차피 우리 라이벌이 부산·대구는 아니잖아요. 런던·뉴욕·파리가 라이벌이죠. 뉴욕의 블룸버그 시장이 3선째 하고 있고 런던의 켄 리빙스턴 시장이 재선했고요. 파리의 들라노에 시장은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시하라 도쿄도지사가 10년째 하고 있고요. 우리가 독재의 망령 때문에 헌법을 단임제로 바꿔놔서 단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마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서울시장이 독재할 일 있습니까.”

-서울시장이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인식되는 게 우리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착각이라고 봐요. 현직 대통령이 시장 출신이기 때문에 생긴 새로운 해석이지 도시는 도시거든요.”

-역대 서울시장들이 대선에 도전을 했거나 뜻을 품었었죠.(오 시장은 네 번째 민선시장이다. 앞서 세 차례는 조순·고건·이명박 시장의 순이다.)
“재선을 하겠다는 뜻을 취임 1년도 안 됐을 때부터 얘기했어요. (기자를 향해) 정치부(기자) 하셨으니까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건지 아실 거예요. 전 바봅니다. 정치치(痴)예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도시행정은 비전을 세우면 10년은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콘텐트로 승부를 해야 세계 도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4년하고 흔들리면요, 끔찍합니다. 서울시가 뉴욕을 이기지 않고 런던·홍콩·싱가포르를 이기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을 얘기할 수 없어요. 그렇게 중요한 수도 서울을 수단으로 삼는다? 대선의 발판으로 삼는다? 그건 정말 피해야 할 일이거든요.”

-대선의 길을 놔두고 서울시장 재선을 하려는 진짜 이유는 뭡니까.
“굉장히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보수정당이 앞으로 10년 정도 더 (정권을)가져가야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집권하기 위한 전략이 한나라당에서 나와야 합니다.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보수, 이 세 요소를 저는 ‘신보수(新保守)’라고 개념 정의하는데, 이 신보수가 10년간 안정적으로 국가발전전략을 가져가지 않으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4만 달러 시대에 도달하는데 출렁거림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때 시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전 서울시장을 재선하면서 (우리나라를)반석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 시장이 일단 재선에 성공한 뒤 도중하차해 2년 뒤 대선에 나올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는 기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정치기자 경력이 (많이)있기 때문에 이런 말 안 믿으실 거예요…. 전 정말 서울에, 서울을 바꾸는 데 미쳐 있어요. 즐겁게 몰입하고 있어요. 앞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만들어가는 데 대통령 역할보다 서울시 역할이 너무 중요해요. 10, 20년 뒤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장을 두 텀(term)하면서 만들어놓은 밑천이 오늘날 우리가 먹고사는 밑천이다, 그런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만약 재선되면 임기를 다 마칠 겁니까.
“당연하죠.”

-한나라당 안에서도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경선에서 이길 자신 있
습니까.
“현직 시장은 업적으로 승부하는 건데 다행히 시정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게 형성돼 있어요.”

-당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어요.
“(시장)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전 오히려 ‘잘 걸려들었다’고 생각하죠. 첫째 대선(에 기여한 게 없다는) 얘긴데 제가 취임하고 첫해, 둘째 해 국정감사는 오세훈 국감이 아니었어요. 질문의 80, 90%가 전임 시장 때 나온 스캔들성 상암DMC, SIFC 문제였는데 국감 치르고 나서 완전히 잦아들었죠. 둘째 2008년 총선 때 서울 48개 선거구 중 40개를 한나라당이 차지했는데 대선 직후라는 분위기 덕도 봤지만 서울시장이 엉망으로 했으면 가능했겠느냐고 묻고 싶어요.”

6·2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원희룡·나경원·정두언·권영세 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야당에선 민주당 한명숙 전 총리 외에 김성순·박영선 의원과 이계안·김한길·신계륜 전 의원,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진보신당 노회찬 전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 버스전용차로제 같은 사업을 많이 했는데 전임 시장의 이런 업적이 플러스가 됩니까. 아니면 부담이 됩니까.
“굉장히 플러스가 되죠. 청계천이나 버스전용차로 개혁을 하면서 서울시민들이 시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랬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콘텐트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정을 하는 오세훈 시장이 돋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세종시 논쟁이 뜨겁습니다. 오 시장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겠습니까.
“서울시가 신청사를 짓고 있어서 기능이 여러 군데로 분산돼 있습니다. 10~20분 거리지만 엄청나게 불편해요. …지금 행정도시 건설에서 나타날 행정의 비효율을 굉장히 간과하고 있어요. 화상전화로 회의하면 된다지만 당장 벌어진 일을 놓고 화상전화 할 때와 앉아서 마주보고 할 때 질적으로 천지차이가 나거든요. 인터뷰도 전화로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마주앉아서 합니까. …일의 본질을 봐야 해요. 원칙이 중요하긴 하지만 행정부처를 임의로 잘라냈을 때 생기는 비효율을,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까.”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 특히 스노우 잼 대회 유치를 놓고 찬반론이 거셌는데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600년 역사, 거기서 흘러나온 고품격의 문화예술이 국가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부류와, 여기에 다이내믹스(역동성)까지 더해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류죠. 하지만 과연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서 로마·파리·런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1등 못합니다. …광화문광장을 역사·문화성의 상징공간으로 했을 때 승부가 날 것이냐, 전 이걸 화두로 던지고 싶었어요. 제가 옳다는 게 아녜요. (반대여론을)받아들였잖아요. 앞으로 (광장을)비워갈 겁니다. 이젠 시민들이 선택해야 해요.”

-광화문광장은 현재진행형인 거군요.
“그렇죠.”

-지난 3년 반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점수를 주는 건 난센스고요, 원도 한도 없이 일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예요. 정말 즐겁게 미쳐 있었고, 시장 되기 전에 가졌던 비전과 보따리 다 풀고 하고 싶은 거 다 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광화문광장 사업일까요.
“(그걸로)비판을 받았다고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비판은)업그레이드 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난 범생이, 수도승처럼 산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창업을 하고 싶다고 책에 썼던데요.
“변호사가 될 때까지는 저도 기존의 프레임에 갇혀 살았던 것 같아요. 이후 방송을 하고 정치를 해보고 서울시장을 하면서 느낀 게 가장 인생을 창의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창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거죠. 스티브 잡스와 같이, 정말로 세상을 뒤집어놓는 사람들은 기업인인 것 같아요. 세상을 확 뒤집어놓는 직업이 있다면 정치와 기업인데, 이생에서 정치를 원도 한도 없이 풀어봤다면 다음 인생은 기업의 영역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어떨까 싶죠.”

-스스로를 어떤 유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범생이예요. 일탈한 적이 없어요. 시장 하면서도 수도승처럼 삽니다. 워낙 술을 못 마시기도 하지만 저녁 먹으면 그냥 집으로 갑니다. 정치권에서 들리는 (당에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음해성 평가는 그런 점이 부족해서일 거예요.”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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