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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디자이너에서 과자장사로 변신, 아이팟과도 경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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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4면

“3000원짜리 과자의 경쟁 상대는 1000원짜리 과자가 아닙니다. 과자도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고, 그러려면 애플의 아이팟과 경쟁해야 합니다.”

출시 첫해 500억 매출 ‘마켓오’ 성공 주역, 노희영 오리온 부사장

고급 과자 ‘마켓오’의 탄생과 성장의 주역인 노희영(47·사진) 오리온 부사장은 거침없었다. 2007년 오리온에 합류해 외식 계열사 롸이즈온 이사로 있던 그는 5일 실시한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오리온 3대 전략사업의 하나인 ‘N★ORION’ 부문을 총괄하는 막중한 위치다. 특유의 추진력과 돌파력으로 마켓오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킨 점이 오너인 이화경 사장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노 부사장이 2008년 12월 첫선을 보인 마켓오는 1년 만에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최근 신제품 8종을 추가로 내놨다. 당초 매출 목표가 연간 1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목표를 다섯 배나 초과 달성했다. 올해는 신제품을 포함해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2일 서울 마켓오 압구정점에서 노 부사장을 만났다.
 
“가짜의 맛과 진짜의 맛은 다르다”
-마켓오는 출시 첫해에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대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솔직히 과자를 처음 해 보는 거라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 과거에 신제품을 해 본 분들은 한 달 매출이 2억원만 되면 나쁘지 않다고 했다. 모두 다섯 종류였으니까 합쳐서 연간 목표 100억원이란 계산이 나왔던 것이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마켓오 같은 프리미엄 과자가 실속은 없고 값만 비싸다고 비판한다.
“성숙한 사회라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과자 없는 세상을 만들거냐. 과자 값이 꼭 싸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오죽하면 ‘과자 값이나 하라’는 말이 나왔겠나. 우수한 품질의 신선한 천연 재료로 과자를 만들어 제값을 받겠다는 거다. 레스토랑을 오래 해서 신선한 식재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1000원짜리 과자는 합성 첨가물로 만들 수밖에 없지만 3000원짜리는 천연 재료를 쓸 수 있다.”

-웰빙 과자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칼로리나 지방 함량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웰빙이 뭔가. 다이어트가 곧 웰빙인가. 내가 보기엔 과자를 먹어 즐거우면 그게 웰빙이다. 사실 초코파이도 웰빙 과자다. 가격 대비 만족도로 그만한 게 없으니까. 커피를 보면 값싼 봉지 커피가 있고, 고급 원두 커피가 있다. 원두 커피는 맛과 향이 다르다. 아무도 원두 커피보고 봉지 커피에 비해 왜 그렇게 비싸냐고 하지 않는다.”

-마켓오는 맛과 향에서 기존 과자에 비해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합성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는다. 가짜 재료를 쓰면 가짜의 맛이 나고, 진짜는 진짜의 맛이 난다. 얼핏 보면 가짜가 더 진짜 같다. 성형수술을 받은 가슴이 진짜 가슴보다 더 예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짜의 맛을 알고 진짜 재료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소비자에게 천연 재료의 참맛을 알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최근 ‘리얼(진짜) 초콜릿’을 표방하며 신제품을 내놨다. 그럼, 기존의 초콜릿 과자는 가짜라는 건가.
“기존의 초콜릿 과자는 ‘정제가공유지’라는 초콜릿 대용품을 썼다. 우리는 합성 첨가물을 쓰지 않으려다 보니 진짜 코코아 버터를 녹인 원액으로 만들었다. 진짜·가짜를 따지기보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맛으로는 100% 이길 자신이 있다.”

노 부사장은 원래 의사가 되려고 미국 남가주대(USC) 의예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인턴 과정 중 인생 경로를 바꿔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들어갔다. 1988년 국내로 돌아와 90년대 중반까지 고급 의상실용 단추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들어선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변신했다. 이후 ‘호면당’ ‘마켓오’ ‘느리게 걷기’ 등 손대는 레스토랑마다 성공을 거두며 외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의사에서 패션디자이너를 거쳐 레스토랑 컨설턴트와 대기업 부사장까지 경력이 매우 다채롭다.
“16세에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갔다. 잘하는 과목이 수학밖에 없어 대학은 의대에 들어갔다. 소아과에서 인턴을 하다 우는 애들 보는 게 지겨워 그만뒀다. 친구의 영향으로 패션스쿨로 옮긴 뒤 한국 유학생이 없는 전공을 찾아 액세서리 디자인을 선택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88년 한국에 돌아와 단추 하나에 5000원씩 받고 팔았다. 엘칸토의 무크 브랜드도 디자인하며 한창 잘나갔다. 삼풍백화점 사고로 몇몇 직원이 사망한 것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사업을 접고 놀았다. 그러다 레스토랑에서 재미를 찾아 2001년 컨설팅 회사를 차렸고, 이 회사는 지금도 하고 있다.”

-마켓오는 원래 서울 강남 지역 레스토랑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오리온으로 왔나.
“마켓오는 처음부터 대기업에 팔아 프리미엄 먹을거리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원래는 CJ와 먼저 얘기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오리온에서 나보고 미국에 가서 새로운 레스토랑 브랜드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마켓오라는 아주 괜찮은 브랜드가 있다.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오리온은 CJ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의사 결정이 빠르더라.”

-마켓오 브랜드를 레스토랑에서 과자로 넓힌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오리온에 와서 1년이 지났을 때 이화경 사장을 만났다. 그전에도 보긴 했지만 별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뭐 아부하는 체질도 아니고. 이 사장이 ‘처음엔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워낙 열심히 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룹에서 뭘 하고 싶으냐’고 묻더라. 그때 ‘과자 한번 해 보고 싶다. 기회를 주면 제2의 초코파이를 만들어 보겠다’고 대답했다. 이 사장이 그 자리에서 본사에 전화해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잡아 주더라.”

-계열사 이사에서 본사 부사장으로 옮긴 것은 다른 대기업에선 보기 어려운 파격 승진인데.
“조직 생활을 오리온에서 처음 한다. 파격이니, 승진이니 하는 거 생각하지도 않는다. 과자회사라고 과자만 보지도 않는다. 패션을 보고,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해외 진출을 구상하고 다른 세상을 꿈꾼다. 내 진정성을 알아준 사람이 이화경 사장이다.”

-조직 생활이 처음이라면 부하 직원들은 어떻게 관리하나.
“나는 가족이 없다. 그게 좋은 점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뭘 할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어떻게 부려먹을까 생각한다. 나에겐 그게 조직 관리다. 나 혼자 뭘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직원들에게도 ‘당신이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얼마나 밑의 사람을 시켜먹느냐가 중요하단 얘기다. 내가 주도권을 잡느냐, 끌려가느냐의 싸움이다. 일단 주도권을 잡는 게 어렵지 그 다음엔 내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욕하는 사람 있는 것도 안다. 욕 먹는 것은 참아도 심심한 것은 못 참는다는 것이 내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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