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갑부 리카싱 '홍콩 머독' 꿈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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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 최대 재벌인 창장(長江)실업 리카싱(李嘉誠)주석(회장)이 지나친 경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언론사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홍콩 언론계 일각에선 "李주석이 미국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을 꿈꾸는 것 아니냐" 는 목소리도 들린다.

李주석의 언론 장악은 전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창장실업 계열인 인터넷 통신업체 톰닷컴은 지난 21일 "명보(明報)산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지분 50%를 인수키로 합의했다" 고 발표했다.

지난 3일엔 李주석과 절친한 관계인 중처(中策)그룹 천궈창(陳國强)주석이 60년 전통의 성보(成報)를 1억5천만 홍콩달러(약 2백18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건축업자 출신인 陳주석은 홍콩 내 16개 회사 주요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성보.명보(지분 10%).광각경(廣角鏡.54%).사이버일보(16%).스타이스트넷(東魅網.27%) 등 여러 언론사 지분을 갖고 있다.

언론과는 무관했던 陳주석이 최근 언론계 주식을 집중 매입하자 李주석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홍콩 언론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陳주석이 李주석의 차남인 리처드 리 퍼시픽센추리사이버웍스(PCCW)주석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리카싱의 언론 진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아주주간 직원들은 "구조조정(감원)이 곧 닥쳐오는 것 아니냐" 는 불안감을 나타냈다.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면 수익 위주 경영으로 '균형있는 보수 정론지' 를 표방해 온 편집 원칙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홍콩 재계에서는 "부동산.인터넷.유통.통신업을 장악한 李주석이 언론마저 장악하려 한다" 는 곱지 않은 시각이 많다.

그러나 학계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홍콩 침회(浸會)대학 신문학과 두야오밍(杜耀明)교수는 "적자에 허덕이는 언론사가 재벌 도움을 받아 경영을 계속한다면 다행" 이라고 평가했다.

홍콩 중문대학 신문학과 쑤웨지(蘇約機)부교수는 "아주주간이 재벌에 인수됐다고 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명보 같은 권위지의 지분 절반이 재벌에 인수된다면 상당히 긴장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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