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제9권 '현제의 세기'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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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 이번에는 로마 전성기를 다루고 있고, 핵심 테마는 통치자의 리더십 분석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제9권 '현제(賢帝)의 세기' 는 그 때문에 의연히 우리 관심을 끈다.

명성 때문에 제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두세 권은 훑었으나, 뒷심이 달렸던 독자라면 중간을 건너뛰고 9권을 붙잡아도 내용 따라잡기에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다소 끈질긴 독자라면 시오노 나나미가 '스타일에 넘치는 내 애인' 이라고 싸고 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하편까지 읽었으리라. 그렇다면 9권을 읽기에는 더욱 좋다.

카이사르와 원로원과의 밀고 당기는 파워게임 이후 창출된 권력 공간 속에서, '진정 행복한 시대' 가 어떻게 가능했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진정 행복한 시대' 란 말은 그 시대를 살았던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증언이다.

9권이 다루는 시기는 서기 98년~161년. 저자가 목표로 한 총15권 출간의 반환점을 여유있게 넘어선 것이다.

다루는 황제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등 3명. 한데 저자는 책머리에서 곤혹스러움부터 토해 놓는다.

일차 자료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살이다. 막상 책을 보면 질릴 정도의 세밀화 형태로 황제들의 치세(治世)와 리더십이 묘사된다.

즉 트라야누스와 그가 파견한 총독 폴리니우스 사이에 오간 서한 1백24통 등은 얼마나 좋은 사료인가.

그러면 황제들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일까. 트라야누스의 경우 로마사의 첫 속주(屬州)출신 황제. 그럼에도 그는 통치 내내 공정함과 자기절제를 생명으로 했다.

즉위식 때 로마 입성도 걸어서 함으로써 시민과의 위화감을 없애려 했고 이후에도 시종여일했다.

황제의 부인과 여동생도 스캔들 한 번 없는 검소함으로 로마 시민들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러나 트라야누스는 '정면돌파형' 의 리더. '영토 확장은 이제 그만 하라' 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유언을 어겨가면서 전쟁에 성공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단 하드리아누스는 제국 전체를 순행하는 부지런함으로 통치체계를 재구축한다. 반면 안토니우스 피우스는 덕행(德行)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어마어마한 리더십의 노하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리더십이란 것이 상식의 실천임을 알게되며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5백쪽 다되는 책을 닫을 즈음에는 심리적 포만감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사족=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왜 이런 매력적인 역사 에세이가 없는 것일까. '과학으로서의 역사서' 와 달리 온기(溫氣)와 스타일이 살아있는 서술 말이다.

근래 나온 책으로는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시대' (김영사)가 그런 목표치에 비교적 가깝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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