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대북 특사' 제안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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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1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경제회생 대책, 남북관계 전망 등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조용철 기자]

여권이 대북특사 파견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지난 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특사 파견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북한과 주변 4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에 대한 '한반도 평화특사'파견 문제를 공식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얼굴(左))과 한나라당 박근혜(얼굴(右)) 대표의 이름도 거론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의장은 청와대와도 조율을 거친 사안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암중모색 단계는 지난 인상이다. 특사 파견은 궁극적으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지만, 남북 정상회담과도 연계된 문제다. 여권이 이 시점에서 대북특사 문제를 가시화한 이유는 미국 대선이 임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북핵 문제인 만큼 오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간에 북.미 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고, 한반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여권의 인식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북특사 파견, 남북 정상회담을 淪?한반도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고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경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게 여권의 판단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북특사 카드를 던진 것은 일종의 '넓은 포석'으로 보인다. DJ가 대북특사로 나설 경우 남북 정상회담 및 북핵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권에서 점점 이탈해 가고 있는 기존 지지층에 긍정적 메시지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북특사 카드도 당장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그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DJ나 박 대표 모두 흔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특히 박 대표 입장에선 난처한 제안일 수밖에 없다. 제안을 거절하면 한반도 평화에 소극적이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국가보안법을 놓고 대치 중인 전선이 약해질 게 분명하다. 보수적 의원들이나 일부 한나라당 지지층의 반발도 예상된다.

그래서 박 대표는 북핵 해결에는 협력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의장이 대북특사를 거론하며 전제조건을 단 것은 당리당략이라고 역공을 취하면서 제안을 받아넘겼다.

이에 더해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무턱대고 특사 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에만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특사 만능주의, 정상회담 만능주의는 대북정책의 기조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당내 의견은 부정적이다.

DJ 또한 그동안 뒤에서 조용히 도울 수는 있으나 자신이 대북특사 등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만은 고사해 왔다.

그러나 여권은 DJ의 역할에 대해선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DJ를 전면에 세우기 위해 여권은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이 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최후의 카드'로서 DJ의 역할을 강조했다. 1995년 DJ의 정계복귀 이후 줄곧 소원한 관계였던 이 의장이 13일 DJ를 예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강민석.이가영 기자<mskang@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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