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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봉화군’ 생활권 통합 새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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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엔 계서당(국가 중요민속자료 171호)이란 고택이 남아 있다. 성이성의 생가다. 성이성은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20분쯤 떨어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엔 성이성의 묘소가 있다. 주변엔 남원부사를 지낸 성이성의 아버지 묘도 있다. 신암리는 성이성의 외가 마을이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출발하는 봉화시티투어 버스는 이몽룡의 유적지 가운데 계서당만 들른다. 봉화군은 인접한 영주시의 관련 유적지를 안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관광 코스에 조만간 성이성의 묘소까지 포함될 예정이다. 봉화군과 영주시가 4일 두 지역의 공동 발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주영 영주시장과 엄태항 봉화군수는 이날 봉화군청에서 ‘영주·봉화 기초생활권 공동 발전계획’을 확정하는 서명식을 했다. 영주시와 봉화군은 보건·복지·의료·관광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8개 부문 17개 협력 사업에 앞으로 5년간 공동으로 9768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행정구역은 갈라져 있지만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공동으로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주시와 봉화군은 5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 이 기초생활권 발전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영주시내와 봉화군청이 있는 봉화읍은 시내버스로 10분 거리. 영주시와 봉화군은 행정구역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 영주시의회와 봉화군의회가 행정구역 통합을 논의했으나 반대 여론에 밀려 성사되지 않았다. 엄태항 봉화군수는 “땅은 넓고 주민은 적은 데다 역사가 달라 시·군 통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인접 시·군 간 협력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주시에 봉화군이 합쳐질 경우 군청이 없어지고 공무원 숫자가 줄고 지원사업이 줄어들 것이 뻔해 군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엄청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신 두 시·군은 ‘생활 속에서의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7일 기초생활권 공동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부문별 실무위원회 등 두 지역의 공무원 64명이 머리를 맞댔다. 공동추진단은 그동안 주민들의 개발수요 조사와 각계 전문가 의견을 듣고 두 지역의 특성과 여건을 분석해 8개 부문별 발전 과제를 도출했다.

공동 발전계획의 슬로건은 ‘영주氏(여)와 봉화郡(남)이 함께하는 多그린 고향 만들기’.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두 시·군이 백두대간의 산림·생태자원을 활용해 녹색성장을 추구하고 전국 최초의 공동 생활권 지자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버스·택시 요금을 조정하고 쓰레기 소각장을 같이 사용하는 문제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안을 먼저 다루기로 방침을 세웠다.

김주영 영주시장은 “같은 생활권이면서 교류가 많은 데도 행정구역이 달라 예산 중복 등 낭비 요소가 있어 왔다”며 “공동 발전계획을 통해 실질적인 공동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양대 황종규(행정학) 교수는 “특정 시설을 어디에 둘 것이냐를 놓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봉화 주민들 사이에서는 작은 봉화가 손해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고 영주시민들은 시 예산이 낙후된 봉화로 들어갈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영주시와 봉화군은 당장 공동으로 산림과학단지와 2015년 세계산림대회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이몽룡 테마파크도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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