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독특한 사법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미국에선 지금 희대의 법정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권력인 미국 대통령직을 법원이 결정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간해선 이해가 쉽지 않다. 사법체계가 주와 연방의 이원체제를 갖추고 있어서다.

◇ 주(州)〓각 주도 3심제다. 1심은 순회(circuit) 또는 카운티(county)법원이고 2심인 항소법원과 최종심인 대법원이 있다.

미 사법제도에서 가장 생소한 단어 중 하나가 순회판사 또는 법원. 건국 초기 판사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판하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지금은 판사가 실제로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각 주는 3심제가 원칙이지만 주마다 법체계가 다양하다. 순회법원이 어떤 주에서는 1심, 어떤 주에서는 2심에 해당한다. 법원의 명칭도 다른 주가 많다.

이번에 고어 민주당 후보 측은 해리스 주 내무장관의 수작업 재검표 불인정 결정을 뒤집으려고 리언 카운티 순회법원에 1심 소송을 냈다.

순회법원의 테리 루이스 판사가 17일 이를 기각하자 고어측은 즉각 항소법원에 항소하면서 시급함을 들어 사건을 대법원에 이송해줄 것을 요청했다.

항소법원은 이에 응했고 그래서 그날 오후 "선거결과 발표를 중지하라" 는 주 대법원의 긴급명령이 나온 것이다.

대개 주의 순회.카운티 법원과 항소법원의 판사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그래서 대부분 당적이 있다.

순회법원 판사가 되려면 카운티 법원에서 최소한 5년은 근무해야 한다. 선출직이지만 선거기간 사이에 공석이 생기면 지사가 정한다. 7명인 주 대법원판사는 주 지사가 임명한다. 현재 플로리다 대법원 판사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 전직 주지사가 임명한 민주당원들이다.

◇연방=대법원과 13개의 고등법원, 94개의 지방법원으로 구성돼 있다. 연방법원은 연방법에 저촉되는 사건이나 2개 이상의 주에 걸쳐 있는 7만5천달러 이상의 민사소송, 연방수사국(FBI)수사사건 등을 관할한다.

부시측은 일부 카운티에서 진행되는 수개표가 다른 지역 유권자의 동등권리를 침해해 수정헌법(연방법) 제14조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연방고등법원은 주가 다룰 문제라면서 이를 기각했다. 연방과 주의 관할권을 명확하게 나눈 것이다.

연방법원의 모든 판사는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하며 종신제다. 대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대법원(대법원장 윌리엄 랭퀴스트)의 대법관 9명은 보수계와 진보계가 5대 4다. 부시가 이번 소송을 연방 대법원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